그때는 아니요, 지금은 글쎄요, 다음은 그렇죠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45
1.
살면서 하면 안 되는 말 : 원래 그래! 절대 안 해!
누가 나한테 뭐 좀 하자고 제안하면 십중팔구 그래! 동의하는 편입니다. 꼭 좋아서 하는 일도 있지만, 별로인데 해보면 과정이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결과를 얻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째 영 내키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웬만한 제안에는 응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안 좋은 기억과 피하고 싶은 결과를 얻은 것이라면 대답은 단호해집니다. 안 하고 싶다면 눈치 한번, 생각 한번, 바로 답합니다. 다시는 나한테 그런 소리 못하게 할 거라는 결의와 다짐으로 제안한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로 딱 잘라 말합니다.
"저는 원래 그래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걸요?"
"안 봐도 뻔하죠!"
2.
평생 꼬장꼬장하게 살던 백 세 노인이 천국에 가겠다고, 저승사자 앞이라고, 머리 조아려 예예 했을까요? 그 노인은 말합니다.
"내 고집은 태어나기도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그랬는데. 저승사자가 와봐라. 내 눈하나 깜빡하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
살아보니 고집 센 노인처럼, 꼬장 한 동네 어르신처럼, DNA가 고집과 아집이라던 나도, 반백살 먹고 나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3.
우리 집에 비정기적으로 친구들이 여행 갈 때 맡아 길러주는 애견호텔을 자처합니다. 사실 말이 좋아 애견호텔이고 강아지 임시 보호소입니다.
아이들 소원은 강아지를 키우는 것입니다. 코로나 칩거시기에 그 소원이 절정에 달했을 때도
"엄마는 동물 싫어. 원래부터 동물이 내 집에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도 안 해봤어. 엄마는 동물 알레르기가 있어서 절대 안 돼."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 내 평생 동물은 우리 집 현관 근처도 못 들일 거라 장담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절대, 원래 이런 단어는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겠습니다.
4.
고등학생 시절부터 학교에서 알아주는 ‘라디오 걸’이었습니다. 반 아이들이 워크맨에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음악을 듣거나 CD플레이어를 파우치에 넣어 소품처럼 지니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나는 점보 지우개 크기만 한 미니 라디오를 주머니에 넣어 다녔습니다.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들려주는 시그널 음악과 오프닝 멘트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내가 신청한 사연과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던 어느 날 내 사춘기는 헤비메탈에서 감성 발라드로 완화되었습니다. 청취자의 신청곡을 들으며 하루를 보내다가, 클로징 멘트 오늘은 좋은 밤이었습니다! 멘트가 들리면 잠들었습니다.
덕분에 라디오 피디가 꿈이었고 그 꿈을 향해 무던히 노력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 첫날, 꿈에 그리던 취미가 직업이 되는 요즘 말로 덕업 일치를 이룬 날, 나는 슬픔과 불안을 느꼈습니다. 취미로 공감하고 즐기던 라디오 신청곡과 사연이 이제는 내 과제물이요 실패 없는 프로가 되어야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하는 동안 라디오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취미는 취미로 직업은 직업으로 분리해서 적극적으로 즐기고 누리자. 다시 라디오 방송을 그만두고 라디오를 들으면 그 기분을 다시 느꼈습니다.
5.
"전 원래 학원 쪽 이야기 쓸 생각은 없어요. 절대 안 쓸 거 같아요"
학원교재가 아닌 학원상담일지를 책으로 내보자는 제안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15년 이상 학원에서 수많은 학생을 만났습니다. 연필 쥐 손을 보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만 보아도,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학생의 학습력과 진학률만큼은 척하면 척하는 삼척동자가 되었습니다. 입결이 좋은 만큼 내 학생들은 힘들고 고단한 시간 속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괴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엔 웃으며 나를 떠난 학생이 있지만, 함께 애쓰면서도 결과가 안타까운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눈물 콧물이 내 책이 되기에는 미안했습니다. 내 학생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재미있을 게 분명하지만 주인공들은 참 힘들었을 것이기에 무대에 올리지 않기로 했던 겁니다.
“네, 그래도 시간 날 때 생각해 보세요.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출판 기획자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다이어리를 꺼냈습니다. 학원 상담 중 강조하고 싶은, 평범하지만 모두가 알아야 할, 궁금한데 묻지 않는, 안타깝지만 대안이 없는, 그렇게 크고 작은 웃기도 슬픈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쏟아졌습니다. 아는 쪽을 한다는 것은 잘하는 쪽을 한다는 것은 분명 막연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곧장 책 하나 쓸 원고분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이런 책을 쓰고 난 뒤, 그래서 다음은? 자문하자 나를 설레게 하는 그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아니요, 지금은 글쎄요, 다음은 그러죠
사람 마음 열두 번 더 변한다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게 사람 마음이라고. 절대 원래 이 말이 언제 그랬나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대나무는 꺾이지 않고 휘어지는 것을 칭찬합니다. 요령과 변화에 맞서 잘 적응하는 것이지요. 개중에는 딱 꺾이고 부러지고 마는 것이 있습니다. 강직하다 올곧다 칭찬하지만 부러지면 대나무의 위엄이 죽는 것이지요. 이렇게 저렇게 세상 이치에 따라 어제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있겠다며 상담일지를 덮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