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도 용기입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46

by 김선하

1.

가능성 없어 보임! 그만하고 싶음!


판단이 섰다면 과감히 버리고 포기합니다. 그동안 내가 들인 시간이 얼마인데, 고생한 거 생각하면, 하다가 미련 맞게 시간만 낭비합니다. 적당한 때에 포기하고 과감히 버리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가 됩니다.


이번에도 실패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음!

그러면 고민할 게 없습니다. 그냥 지금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당장 원하는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면, 일단 하고 봅니다. 물론 이것 아니고도 할 일은 있습니다. 남들이 "이제 그만해! 할 만큼 했어!"라고 위로와 격려랍시고 종용을 재촉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만할 때가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직 그만하지 않겠다면, 끝까지 해보겠다면, 미련도 망설임도 아닙니다. 안달 난 강아지에게 무엇인들 자제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비유가 적절치 못하지만 딱 그런 마음이 들 때면 그냥 고고직행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2.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 갑니다. 북토크, 코칭, 강연에 참석하기 위함인데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움직이는 편입니다. 보통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진행되는 이 행사를 위해 왕복 다섯 시간을 들입니다.


"쉬는 날인데 좀 쉬지", "뭐 한다고 그 고생을." 합니다. 남들의 걱정에도, 비아냥에도 거침없습니다. 이유는 하나. 내가 좋아서 합니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갑니다. 이것저것 눈치 보고 처리해야 할 일에 있더라고, 고생을 사서라도, 내가 좋아서 하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 하는 겁니다.


그런데 달랑 행사만 들렀다가 내려오기는 오고 가는데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깝습니다. 서울에 딱히 반가이 맞아줄 사람은 없습니다. 두어 시간 볼일이 끝나면 인근 미술관, 서점, 카페, 사찰이나 주변을 걷습니다. 괜찮은 행사와 전시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알아두었다가 들릅니다. 일부러 서울까지 갔으니 서울 냄새 실컷 맡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또 기것해봐야 거기가 거기입니다. 그냥 여기는 서울이니까,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니니까 이방인 입장에서 타지사람입장에서 낯설게 기웃거리는 정도입니다.


3.

서울에 온 일차적인 목적이 끝났습니다. 두어 시간 전 계단을 올라올 때의 가파름이 내려갈 때는 가볍게 개운했습니다. 지하철 입구 앞에서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 맵을 클릭 합니다. 길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한 번에 잘! 도착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맵어플을 열어 일이 끝나면 들르기로 했던 목적지까지 지하철 노선과 경로를 확인합니다. 대중교통으로 50분 정도. 이만하면 갈 만합니다. 오전에 시간만 확인하고 당연히 지하철 갈아타면 되겠다 싶었는데 버스 환승이라니. 나의 아킬레스건이 건드려지는 난관 봉착.


나는 버스를 타지 않습니다. 버스 노선을, 동서남북 방향을 읽지 못합니다. 더 문제는 버스 손잡이를 잡지 못합니다. 녹슨 철 알레르기와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크게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지만 나에는 치명적인 스몰 트라우마 중 하나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기억합니다. 비 오는 날 버스를 탔습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녹슨 손잡이를 잡았고, 그것이 빗물과 섞여 비린내가 났는데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온몸이 붉어지더니 간지러워졌습니다. 그 간지럼을 못 이겨 긁어댄 통에 온몸에 가시랭이가 났습니다.


그 이후로 버스는 타지 않았고 부득이하게 버스를 타게 되면 함께 탄 사람의 옷자락을 잡습니다. 아무것도 잡지 않은 채 몸에 힘을 주어 나에게만 의지하여 중심을 잡고 서 있습니다. 그러다가 버스가 급제동하거나 거칠게 운전하면 바닥에 넘어지거나 창문을 손바닥으로 눌러 겨우 버티는 정도입니다.


4.

극복해야 하는 것, 참아내야 하는 것,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것. 버스를 타야 하는 일이 바드시 필요한 일이라면 도전하고 싸워서 극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 극복할 것도 이겨낼 것도 참아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한쪽에 묻고 잊고 살면 됩니다. 나는 버스 손잡이를 이기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됩니다. 다른 이동 수단도 충분하니까요. 그러다가 반드시 타야만 할 때가 오면 그때는 또 어찌어찌 타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묻어 두고 잊은 채 살아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럼 더 이상 묻어놓지는 말아야겠지요. 내가 책을 내고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한쪽에 묻고 십 년을 지냈습니다. 나에게 작가는 꿈이고 목표였지만, 동시에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딱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불편함과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자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작가 안 해도 먹고살고, 책 안 써도 할 게 많은데, 굳이 책 쓴다고 고생을 하나 싶었던 거죠. 그냥 묻어두고 살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책을 내고 작가가 되고 싶어 안달 난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그동안 마음을 달래려, 심심해서, 소일거리 삼아, 하던 글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목표는 책을 쓰고, 투고하고, 출판하고,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잃었던 글쓰기 감각을 깨우기 위해 전문가 코칭도 받는 것이 내 앞에 놓인 급선무였습니다.


5.

버스 손잡이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역으로 가기 전 성북동 길상사 대신 교보문고를 택한 이유는 버스 때문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교보문고를 가면서 가는 이유가 바뀌었습니다.


"그래, 오늘은 절구경 말고 책구경 가자. 남들이 낸 책 보러 가자."


지하철은 교보문고 광화문역에 정차했고 나는 지하철 문에서 나와 몇 발 떼니 눈앞에 교보문고 광화문점 입구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을 낸다는 사람이 대형 서점에 얼마 만인지요. 아날로그니 감성이니 어쩌니 하면서 동네 책방과 독립 서점을 기웃거렸습니다. 이제부터 책 내는 일이 내 일 중에서 일 순위가 되어버렸으니 당연히 들러야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서점 입구 입간판과 광고란은 작가 북 토크, 작가와의 만남, 신간 서적 안내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보통 때라면 그냥 한 번 흘깃하고 지나쳤을 이것들이 이제는 단어, 디자인, 제목 하나하나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내 책을 서점에서 만나는 순간을 상상합니다. 남들 다하는 작가와의 만남, 북 토크, 신간 안내 등 어떤 식으로든 진행이 되겠지요.


곧장 베스트셀러가 모인 곳으로 갔습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팔리는 책이 무엇인지, 출판사가 어디인지, 표지는 어떤지, 걸음을 옮기며 재빨리 스캔했습니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책은 표지 디자인에 참고할 요량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계약서에 도장만 찍었을 뿐인데, 아직 원고 코칭은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벌써 출판 후 활동과 책표지 디자인을 생각합니다.


내 책을 서점에서 만나는 기적, 바라던 바는 이제부터 이루어야 할 것이 되었습니다. 한두 시간 교보문고에서 노닐다가 책 몇 권을 사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서울발 대전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 내 마음 모두 싣고 떠나갑니다 ♬♬♬. 무릎을 접어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렸습니다. 책을 위해 나는 자판기를 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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