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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Aug 23. 2023

혼자 시작이 어렵다면 입문비용을 내세요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54

1.

직장 그만둘 거야.

가게 계약했어.

다음 주 오픈해. 도와줄 거지?


그녀가 일주일 간격으로 보낸 문자를 조합하면 ‘퇴사 후 창업’. 자발적인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존 회사에 다니면서, 일 년 남짓 일요일 한나절을 가게에서 보조로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시간 투자를 강행한 결과로, 단순노동과 잉여 소득의 재미를 틈타 소리 소문 없이 창업을 알아봤습니다. 하고 싶다는 생각만 일 년, 해볼까 다짐을 얻는데 일 년, 이제 하자 하는데 다시 일 년. 그렇게 시간은 흘렀습니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주 5일 근무로 출퇴근이 보장된 보기엔 안정된 직장이었으므로 급할 것도 재촉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시작을 미룬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과 해야지 하는 다짐만으로 족히 삼 년이 지났습니다.


2.

가게를 여는데 얼마가 투자되었고, 이후 얼마의 수익을 예상하는지는, 계약서 도장이 다 마른 후 나에게 공지되었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태클을 걸 것을 감지한 그녀가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산이었을 겁니다.


창업 알림과 동시에 모자란 창업비용을 좀 빌려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습니다. 나는 투자가 아닌 차용을 명시하며 돈을 꾸어주는 대가로 창업 과정과 비용을 상세히 들었습니다.  그중 나를 놀라킨 한 단어. 바닥 권리금. 한 마디로 이 자리는 뭘 해도 되는 자리, 자리값입니다. 아파트로 치면 로열층, 역세권, 뷰, 학군, 대단지 등 뭐 그런 류의 명분을 들어 돈값을 매긴 것입니다.


나라면 당연히 이런 창업은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창업비용이 흔히 말하는 바닥 권리금과 프랜차이즈 계약금이 그야말로 억 소리에 버금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직장 생활할 만큼 했고 사회 물 좀 먹었지만, 구멍가게 하나 차리는데 이런 비용이 든다니. 창업도 배포 없이는 아니 돈 없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업비용치고 세다. 이렇게 비싼 투자라면 난 안 한다.”

벌어봐야 얼마나 벌까 하는 의구심에 오픈날을 하루 앞두고 나무랐습니다.


3.

“일을 시작하려면 동기가 있어야 한다며? 그 동기 부여를 해준 사람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서? 그게 입문 비용인 거잖아? 아까워하지 마. 나에게 입문비용을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였지? 언니였지! 내가 회사를 떼려 치고 싶다는 말을 한두 번 했어? 내가 가게 열고 싶다는 말이 장난이었어? 난 회사 다니는 동안 내내 그만두고 싶었고 내일이 하고 싶었어. 그런데 맨날 망설이고 주저하고. 봐봐 지금 나에게 남는 게 없잖아. 내가 내 일을 시작한다니까 다들 대단하다고 해. 시작하고 싶은 마음만 있지 실제 시작하는 사람은 얼마 없거든. 난 이렇게 시작했잖아. 난 스스로가 대단해.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거든. 이 말을 하신 분이 누구더라? 난 언니 말을 귀담아들었을 뿐인데.”


아. 언젠가 내가 분명 이런 말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냥 보편적인 이야기였고 입문비용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라는 요지는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그녀는 그렇게 가게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서는 그때 시작하길 잘했다!입니다.


4.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일을 하거나 새로운 경험에 맞닥뜨릴 때 그 시작점을 두려워합니다. 걷고 뛰는 것은 닥치면 하겠지만 굳이 첫 발을 출발선에 들이는 것에는 망설여집니다. 일단 들여놓으면 나머지 발은 자연스레 옮겨갈 것인데 그 첫발이 항상 문제입니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말 무식하게 용감하지 않으면 발들일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굳이 시작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요. 다짐하고 결심해서 하자 해놓고도 막상 출발선에 서는 것을 망설여 다시 되돌아옵니다.


5.

일을 하겠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지불하고, 사업 신고서를 제출하고, 개업을 알립니다. 일사천리. 이제부터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여기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시작 전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망설임과 주저함도 못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입금하는 순간, 그녀에게 다른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잘해야지. 들일 돈이 얼마인데. 본전을 찾아야지. 머릿속은 오로지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몸은 저절로 움직여졌습니다.


그래서 일단 저지르는, 발을 들여놓은 것이 우선입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일단 시작하고 볼 일입니다. 기회비용, 입문비용은 그러라고 있는 것입니다.


6.

글쓰기. 도저히 혼자는 안 되겠다 싶으면 글쓰기 모임에 가입하거나 글쓰기 코칭에 등록하세요. 참가비가 있다면 쓰세요. 등록비가 있다면 과감하게 드리세요. 들인 돈이 아까워서 쓸 겁니다. 적어도 주저하는 마음은 아낄 겁니다. 허송세월하는 시간은 아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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