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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Aug 22. 2023

글과 거리 두지 마세요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53

1.

나의 글쓰기 코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우리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습니다. 내가 자리에 앉아 원고를 펴는 사이, 그는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그는 보통 오늘의 날씨와 오늘 길의 안부를 묻습니다. 워밍업도 오리엔테이션도 없이 원고를 봅니다. 두 편을 눈으로 스캔하듯 합니다.


문법적인 오류라면 우선은 맞춤법 앱을 이용하고 차후 교정 단계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장이나 문단 배열이 매끄럽지 않다면 일정 패턴을 찾고 교열과정에서 보완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나의 글쓰기 코치는 원고에 직접 빨간 줄을 긋거나 첨삭을 하지 않습니다. 코치는 내 글을 헤집지 않고 들추어내지 않지만 흐릿해 보이던 동공이 조금 확장됩니다. 순간 아차하는 마음에 나의 동공은 상대적으로 작아집니다. 마치 남에게 보이지 않고 쿨한 척 지냈던 내 삶 뒤를 들킨 듯합니다. 코치는 숨겨두었던 내 단점 하나를 끄집어내듯 내 글에서 단박에 나의 가장 큰 문제를 찾아냅니다.


2.

“작가님 글은 거리감이 있어요. 작가님 글인데 작가님이 그 안에 없어요. 멀찌감치 서서 남 이야기를 하는 듯해요. 글과 거리를 두지 마세요. 글 속으로 들어가세요. 이 글은 작가님꺼잖아요.”


그는 대뜸 자신의 노트북 파일에서 글 하나를 꺼내 보입니다. 나라면 이렇게 썼을 거라고 예를 들어줍니다.

‘내 글에 내가 없다고? 내가 내 이야기를 쓴 것인데 나 같지 않다고? 거짓 없이 솔직하게 썼는데...’

반론 제기하고 싶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적인 조언 앞에서 창피함과 민망함은 내 몫으로 남깁니다.


내 글에 표현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진실성이 없는 것인지? 결론은 후자였습니다. 나는 내가 행복하려고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나 편한 대로 글을 썼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쓰지 못하고 나를 위해 추억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러니 쓰는 사람은 편했겠지만 읽는 사람은 불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진짜 나를 보여주지 않고 적당히 나를 위해 포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처음으로 돌아가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4.

‘나는 왜 글을 쓴 거지?’

다시 글을 쓰기로 다짐한 데는 재미 너머 자가치유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결혼 후 부조화 속에서 황폐하게 쓰러진 나는 어떻게든 살아야 했습니다. 나는 세상 모든 일을 참고 견딜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시댁 식구들이 나에게 가하는 태도는 억울하다! 였습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따져 물을 수도, 억울하다 항변할 수도 없는 며느리였습니다.


내가 왜 억울한지 하나하나 메모를 하며 답을 찾는 과정에서 결론이 이상한 곳으로 향했습니다. 엄마. 이게 다 엄마가 없어서 그런 거다. 모든 화살이 엄마에게 향했고 비수를 꽂았습니다. 없는 엄마를 불러올 수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 억울한 시집살이의 원인이 엄마였으니 엄마에게 하소연이나 하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라는 단어가 참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고 애달프지만 또 힘이 납니다. 엄마 이름 한 번 부르고 나면 어깨 펼 힘이 생기고, 엄마 얼굴 한 번 그리고 나면 눈물은 어느새 말라 미소 짓고 있습니다.


엄마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꿈에서도 항상 그랬습니다. "딸아 행복해라." 딸이 하는 대로 그대로 지켜만 보았습니다. 딸이 엄마 때문에 못 살겠다 해도 그런가 하고,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됐다 해도 또 그런가 했습니다. 그러니 엄마는 찢기고 해지고 엉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딸은 숨 쉬고 좀 살만해졌습니다.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나는 나 편하려고, 나 행복하려고 내 마음대로 엄마 이야기를 글에 올렸습니다.


6.

나는 편한 거리에 서서 적당히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불편했다면 그것이 왜 불편했는지 생각하고 원인을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엄마 속으로 제대로 들어가 왜 내가 엄마를 불편해했는지 들추고,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했는지 알려주고, 이제는 그 불편함이 어떻게 치유되었는지, 그래서 지금은 어떤지 까지 잘 마무리하고 다시 엄마를 보내주어야 하는 거였습니다.


다시 수정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나는 엄마 속으로 들어가 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나옵니다. 엉키었던 실뭉치를 꺼냅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줄 하나를 집습니다. 실타래 한 줄을 당기고 비비고 매듭과 매듭 사이를 넣고 빼고 여러 번 되풀이했더니 한 줄이 풀렸습니다. 한 줄을 풀었더니 다음 줄이 이어 풀리고 줄줄이 풀렸습니다.


하나를 해결하니 다른 하나는 좀 더 쉬워집니다. 하나가 어렵지, 한 번이 어렵지, 처음이 어렵지, 이 고비만 지나면 나아집니다. 쉬워집니다. 괜찮아집니다. 할 만 해집니다. 거리두지 말고 바짝 당겨 앉아 정면을 봅니다. 그것과 정면승부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입니다. 생각보다 쉽게 문제가 보이고 해결책이 떠오릅니다. 거리 둘 것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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