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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Aug 31. 2023

들뜨지 않게, 가볍지 않게, 서서히 나아가겠습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62

1.

엄마,

내가 서글프고 힘겨울 때 비명처럼 부르는 그리운 마음


딸,

엄마가 외롭고 고달플 때 나지막이 불렀을 애타는 마음


엄마가 곁에 있을 때 엄마는 항상 소원했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함께 살 수 없지만 그래도 일을 그만두지 말라고. 내가 쓴 원고를 라디오에서 듣는 게 좋다고. 그러니 계속 작가가 되어있으라고. 그러나 엄마가 떠나던 해에 회사-방송국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책을 내자고 생각했을 때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엄마. 그래 엄마를 쓰자. 엄마를 내보이자. 내 첫 책은 엄마야. 엄마여야 해.'

엄마와 관련된 사진, 글을 더 모으고, 간간이 메모해 두었던 쪽지도 모으고, 블로그에 비공개로 써두었던 엄마에 대한 추억도 모두 모았습니다.


딸과 함께 이주 동안 호주 여행을 담은 여행기 <하자, 많은, 여행>

절에 가지 못하는 직장인이 법문 대신 읽었던 스님들의 책 <스님의 서가>

그리고 엄마 기재일에 올리려던 엄마 헌정 시집을 산문으로 옮긴 엄마 속엣말 <엄마>

 책을 내야지 마음먹었을 때, 출판사에 투고할 책 리스트는 세 권이었습니다. 세 편 중 출판 에이전시에서는 <엄마>는 해 볼 만하다, 의견을 주었습니다.


그럼 엄마로 하겠습니다. 나는 코칭을 받는 동안 엄마만 생각했습니다. 엄마와 갔던 여행지와 시장, 함께 먹던 음식, 엄마만 해줄 수 있던 요리, 즐겨 부르던 노래, 엄마 취향의 옷들.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소환하고 추격했습니다.


엄마를 쓰는 동안 슬프고 기쁘고 온 감정들이 내 몸 하나하나에 박혔습니다. 다음날 엄마 글을 수정할 때는 귀찮고 어렵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이 글쓰기 작업이 얼마나 위대하고 신성한 지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행위에 짜릿하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수정을 몇 번 더 하는 동안 엄마 에세이가 서점 가판대에 놓일 것을 생각하니 다시 설레었습니다. 내가 이 책을 낸다면 그 이후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상상했습니다. 유명 저자들이 하는 북 토크와 저자와의 간담회 그리고 출판 기념회 등 그 속에 있는 나를 그려봤습니다. 모임이나 커뮤니티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꽤 의미 있고 흥분되는 시간이라 생각했습니다.


독자가 아닌 작가적 입장에서 무대 위에 내 글이 올라갑니다. 엄마를 추억하고 엄마와 다니던 길을 따라 걸으며 독자들과 혹은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최고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서 책을 내고 싶었습니다.


2.

올해 내 책을 서점에서 만나는 기적을 눈으로 경험했습니다. 책 발행을 일주일 앞두고 인터넷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설렘과 기쁨도 잠시 누가 내 엄마에게 관심이나 있을까, 내 책을 사주기나 할까, 내 이야기가 궁금할까, 걱정에 걱정을 물어 지난밤이었습니다. 생각은 생각을 낳아 고민이 되었고 고민은 근심 걱정으로 오늘 내내 나를 억눌렀습니다.


"책을 내다니 이제 작가인가? 축하한다.! 대단해! 멋지다 내 친구!"


축하 인사에도 영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내 책 하나 사줘,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합니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쓸 때가 행복했습니다. 책을 내고 보니 선배 작가의 말이 새삼 귀에 들립니다.

"글 쓸 때가 좋지. 책 나와봐라. 내 책 하나라도 팔아야지 전쟁이 그런 전쟁이 없다."

 오늘은 그 말이 정답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은 가끔 귀찮았고 가끔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러나 잠깐을 제외하고는 보통 행복하고 설렜습니다.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인터넷 서점에서 내 책을 검색하는 순간, 기쁨과 환희가 단 몇 초만에 사라졌습니다. 이후는 걱정이 이어지더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현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숫자에 끌려다니지 마라. 그런데 책이 세상에 나온 지 단 하루 만에 미리부터 출판 부수, 판매 부수, 판매량이라는 숫자를 머릿속에 들였습니다. 주저앉아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안 팔리면 어쩌나, 첫 책이 마지막 책이 되면 어쩌나. 행복하려고 시작한 일이 불행을 자처한 골이 되어 어렵고 힘든 하루였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책을 냈나? 후회와 원망이 휙 지나갔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걱정의 늪에서 나올 방법을 모색해야겠습니다.


3.

몸을 가라앉힙니다. 나는 경전 책을 끌어내려 좌복 하고 앉았습니다. 눈을 감습니다. 들뜬 어깨와 엉덩이를 누르고 뻗어있는 머리카락과 눈꼬리를 끌어내리고 하중에 힘을 줍니다. 들뜬 가벼움을 일부러라도 묵직하게 눌러 놓습니다. 큰 바위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바위에 기대고 바위에 눌려 잠시나마 가만히 정체되고 싶습니다.


어두운 바닷속을 헤엄쳐 내려갑니다. 밑으로 밑으로. 바다풀과 바다 동물들이 앞다투어 내 몸을 휘휘 감더니 순간 사라집니다. 햇살에 미지근하던 물이 냉각수처럼 차가워져서는 내 몸이 잠식되어 갑니다. 아차 하는 순간 내 몸은 파르르 떨었다가 마음과 정신이 깨어납니다.


눈을 뜹니다. 어둡던 세계에 밝은 빛을 발하니 눈이 부셔 잠시 눈살을 찡그립니다. 멈칫! 합니다. 거친 숨을 부드럽게 옮깁니다. 사이사이 고른 숨을 내쉽니다. 이제 다시 나아가도 되겠습니다. 책을 내고 들뜬 내 마음을 가라앉혔으니 조심스레 조용히 설레지 않도록. 이전보다 좀 더 진지하게 그러나 심각하지 않게 서서히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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