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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하 Sep 26. 2023

글을 쓰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겁니다, 김훈의 <개>를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88


1.

"노래 잘 들었습니다. 가수가 노래 잘한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평범한 인사일 수 있습니다. 이 가수는 감정을 숨기고 절제할 줄 압니다. 그것이 듣는 이의 감정을 살아나게 합니다. 선곡한 노래를 잘 해석해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불러서 좋았습니다."


음악 오디션 프로에 나온 심사위원의 평이었습니다. 노래하는 가수가 노래를 잘한다, 는 것은 당연한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글 쓰는 작가에게 글 잘 쓴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당연한 소리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못쓰면 될까요? 한 분야의 직업인, 소속인, 전문가가 잘한다는 소리에 칭찬으로 여겨 좋아만 할 수는 없습니다. 


글 참 잘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소리, 당연한 말을 듣고 싶은 것은 욕심을 너머선 속마음임을 속일 수 없습니다. 



2.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글의 소재는 뻔합니다. 나올 만큼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보고 묘사하느냐에 따라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묘사가 잘 된 글이 잘 쓴 글이라 생각합니다. 글의 거리를 줄이고 글 속으로 들어가 내가 상상할 수 있도록 표현해 낸 것이 내가 생각한 묘사입니다. 또 하나의 묘사는 평범한 소재와 사건 하나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찰하여 그림을 보듯 실제 하듯 글로 풀어쓴 것입니다. 


글쓰기 코치를 하면서 문장 하나를 예로 들어 고쳐주지 않고, 책 한 권을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 문장 고쳐준다고 글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한 문장, 한 단락,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데는 단어나 수식어 하나, 맞춤법 잘 쓴다고 될 게 아닙니다. 전체를 이루는 연결성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사물 하나만 놓고 관찰해서 쓰면 단순한 서술이고 설명에 그칩니다.



3.

글을 쓴다는 것은 글과 거리를 두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김훈의 소설 <개>를 읽어보면 묘사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내가 묘사 잘하는 김훈의 소설을 늦게 읽은 데는 오래전 김훈의 인터뷰를 읽고 섣부른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두고두고 죄송할 뿐입니다. 그가 검지와 중지에 담배를 끼운 채 보여준 손짓, 웃음보다는 실소에 가까웠던 굳은 표정, 조금 거친 듯 강고한 말투와 억양. 미디어를 통해 얼핏 본 그는 꽤 무겁고 지루한 고집스러움을 지닌 중견 작가였습니다. 그의 책도 그럴 것이라고 여겼고, 이것이 그의 책을 늦게 읽은 이유였습니다. 


문장과 문장이 서로 주고받으며, 일시적인 장면이 이어져서 무성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단막극을 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개를 묘사했는데 개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화집도 아닌데 읽는 내내 사람 이야긴가 착각하게 만듭니다.


작가는 개를 관찰하면서 계속 개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개의 꼬리가 움직일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지, 개의 울부짖음은 언제 어떻게 달라지는지, 내가 개라면 어땠을지, 어느새 작가는 개와 일심동체가 니다. 나는 나고 개는 개다, 하는 마음이면 이렇게 묘사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개고 개가 나다, 하는 심정이어야 이런 글이 가능한 겁니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쓴다는 것이고, 마음을 쓴다는 것은 애정을 쏟는 것입니다.



4.

나는 독서가는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해마다 반복해서 읽습니다. 물론 내가 읽은 고전이 내용보다 표지 디자인에서 끌린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책을 읽는데도 이유가 있듯 읽지 않는데도 명분을 만들었던 겁니다. 이렇게 훌륭한 책을 편견으로 읽지 않은 그동안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선입견이 오만을 부른 것입니다. 


김훈 소설 <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내 글을 펼쳤습니다. 다시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거리를 두지 말자. 나는 다시 내 글에 마음을 쓰고 애정을 쏟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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