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자의 일상 철학 087
1.
내 글에는 맞춤법에서 보이는 버릇이 있습니다. 문법적인 면에서 정말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문장에서 나는~, 내가 ~처럼 문장의 주어인 게 뻔히 아는 주어를 매번 써서 표현이 지루해지는 것입니다. (요 부분은 지난 에피소드에서 다루었습니다.)
2.
또 하나는 ‘~의’ 같은 일본식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데 영어 에세이에서 소유격 's 보다는 소유격 전치사 of를 자주 사용합니다. 교재를 읽고 해석할 때 소유전치사를 강조하다 보니 내 글에 습관이 들었습니다.
'나의 친애하는 당신께, 나의 사랑, 당신의 길' 뭐 이런 정도는 영어의 소유격 of 개념으로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성의 관점에서, 보도성의 의도로' 같은 표현은 맞춤법이 틀린 것도 아니고, 읽는데도 발음상 불편하지 않아 사용한 습관이었습니다. 다만 이것은 일본식 표현으로 한글 맞춤법에서 가능한 쓰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내가 일본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말 다듬기 원칙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순수성을 추구해야 한다.
언어의 규범성을 추구해야 한다.
언어의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
가능하면 외국어, 특히 우리나라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문화를 지배했던 일본식 표현을 자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글에 그 잔해가 남아있어서 우리말 지킴이는 순수성을 내세워 일본식 표현을 우리말로 쓰려고 알리는 중입니다.
3.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일본식 표현을 찾아보았습니다. 맨손, 맨발 ‘맨-’ 들볶다 ‘들-’ 시퍼렇다 시뻘겠다 ‘시-’ 가처분 가접수 ‘가-’ 이런 접두사도 일본식 표현입니다. 문화 지배를 받은 나라다 보니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것도 그렇고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접두사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독특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말 익히기 단원이 있는데 일본식 표현을 알려주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학교 선생님은 접두사를 가르치면서 단어를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 같은 접두사를 쓴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내 학창 시절 국어에는 우리말, 순수 우리말 같은 단원 자체가 없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지났고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으니 그럴만합니다.
4.
재미있어서 장난으로 사용하고 잘못 알고 쓰는 것도 있습니다. '난닝구에 빵구났어' (‘러닝셔츠에 펑크 났어’- 이 표현도 우리말은 아닙니다. 우리말이 더 어색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올드미스, 백미러, 리어카’ (‘노처녀 뒷거울 손수레)’로 우리말이 더 어색할 정도로 일본 말에 익숙해진 단어입니다.
가라(가짜), 진액(진액), 단속(단속), 결판(흥정), 망년회(송년회), 식비(밥값). 특히 진액과 식비, 망년회는 학교 선생님도 많이 쓰십니다. 가끔 강한 고집을 보이기 위해 굵고 강하게 드러내려고 흥정한다! 는 단어는 내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명사뿐만 아니라 동사도 있습니다. 애매하다(모호하다), 수순을 밟다(절차를 밟다). 어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인데 나도 많이 씁니다. 사실 이런 동사는 일본 표현일 줄 모르고 사용해 왔습니다. 때론 일본식 표현임을 알고도 습관처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정말 몰라서 쓰는 것도 있습니다.
3.
이런 단어들은 맞춤법 틀에 넣으면 순화용어,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이유로 대체할 우리말을 제시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면 영혼을 갈아 넣는 것입니다. 내 나라 내 말이 있는데 정서적 반향을 일으키는 일본식 표현, 그것이 아니더라도 외국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고쳐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