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nolia, 신이화 꺾이던 날>
혹독한 추위 속에 붉게 피어나는 겨울의 꽃들, 동백과 매화 다음으로 봄을 먼저 맞이하는 꽃, 목련의 계절을 기억한다. 목련은 한겨울에도 앙상한 가지마다 콩알만 한 봉우리들의 모양을 잡으면서 부지런히 봄을 준비한다. 그 모양새가 겨우내 눈에 밟혔다.
신이화는 목련의 옛 이름인데 차로 마시면 살짝 화-하게 느껴지는 매운맛과 함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어 붙은 약재로서의 이름이다. 나는 목련이 매그놀리아 Magnolia, 신이화 辛夷花, 그리고 목련까지 각각 불릴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결의 옷을 입는다고 느꼈다.
나무에 핀 연꽃(목련)이라는 이름은 어딘가 연꽃의 아류이자 남성적인 묵직함이 느껴지고, 매그놀리아 역시 Magnus라는 어원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이 있다. 그래서 신이화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목련의 맛과 향이 떠오르면서 하얗고 우아하여 마냥 고결해 보이는 그 꽃이 겨우내 추위를 독하게 견딘 그 봉우리의 알싸함을 결국 표현해 내는구나 생각했다.
관조하던 대상물이 내 입 안으로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된다. 시각에서 후각과 미각으로 전이되며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공식이 없는) 새로운 감각관념의 정의가 이루어진다. 그 전이는 직접적이고 폭력적이며, 희디흰 고결함이 청량한 알싸함이 되는 난데없는 연결이다. 나는 그 난데없음이 더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나는 혹독하게 시리던 내 인생의 겨울철을 나주의 어느 꽃농장에서 보냈다. 사다리를 타고 목련나무만큼 키가 커져서 봉우리를 툭툭 꺾어내며 봄을 맞이했던 날들이었다. 자연 속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꽃물이 될 봉우리들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