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권을 할 줄 알아야 해.
요즘 친구들에게 “취권”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영화인데 주인공인 성룡이 1979년 찍었던 영화 제목이다. 이 영화가 인기를 끌게 되자 1997년에 취권 2가 제작이 되었고 아마도 내가 봤던 건 그때쯤이 아닐까 싶다.
영화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취권이라고 하면 술을 마신 듯 비틀비틀하다가 적정한 때에 한방을 매겨 적을 쓰러트렸던 주인공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취권은 술을 마시고 취한 척(?) 아니면 진짜 취해서 적을 방심하게 하고 그 틈새를 노려 한방에 쓰러트리는 것이다.
사장님은 어떤 손님들이 오셔도 격이 없이 대하신다. 교수님들이 오시건 국회의원이 오시건 높으신 사장님이나 그룹 회장님이 오셔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 같으면서도 편안하게 말씀하시고, 어떨 때는 아이처럼 장난꾸러기같이 장난기 가득하게도 말씀하셨다가 한방을 날리는 듯한 말씀도 하신다. 정말 내가 옆에서 보고 있으면 이것이 취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대와도 그 사람이 마음을 놓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드시는 것이다. 사장님이라고 해서 무게 잡고 계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장이기 때문에 어쩔 때 보면 영업사원보다도 더 전략적으로 사람들을 대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사장님은 그런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은 취권을 할 줄 알아야 해. 헛소리하는 것 같아도 그 안에 뼈를 담고 있어야 한다. 얼렁뚱땅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력으로 해 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 사장이기 때문에 폼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사장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해.”
자신의 타이틀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장이니까 직원들이랑 밥 안 먹어. 직원들이랑 말 섞으면 자꾸 뭘 해달라고 해서 나는 일부러 직원들을 피해. 직원들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개인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말하는 다른 사장님들을 여럿 봤다.
그렇게 행동해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땐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그 사람의 진실을 알면 아무도 그 사람 옆에 있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미 직원들도 사장의 그런 마음을 알기 때문에 충성을 다하는 직원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무게 잡고 체통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보다 취권을 하는 사장님이 훨씬 낫다.
사장님이 취권을 할 때 상대방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정말 저 사람이 고수구나’를 알아보는 사람과 ‘어? 저 사람은 다 받아주는 사람이네’라며 슬슬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손동작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이 고수인지 아닌지 아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방이 취권을 해도, 그 안에서 그 사람의 핵심을 아는 것이다. 고수는‘저 사람이 취권을 하는 고수구나. 조심해야겠다.’ 하지만 하수는 끝까지 모른다. 그러다 저 사람이 취했네... 하며 함부로 대하다가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사람이다.
판을 읽게 되니 사람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이 진짜 고수인지 그 모습이 보이게 되는 것 같다. 그전에는 옷도 멋있게 잘 입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생각에 유연성이 있는 사람들이 고수라 생각했다.
NO! 진짜 고수는 취권을 하는 사람이다. 흔들흔들하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뺏는 사람이 있다. 얼렁뚱땅하는 것 같은데, 실력으로 봐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과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잘 웃는다. 그리고 항상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무서운 실력자이다.
고수들은 자신만의 한방이 있다. 사람들에게 10개 중 9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그 사람 뒤에 20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고수들의 특징인 것 같다.
나는 사장님처럼 취권까지는 하지 못한다. 그렇게 유연하게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고 호형호제하면서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그런 매력은 없다. 하지만 사장님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나만의 한방은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 천천히 가지만 꾸준하게 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한방이라고 생각한다. 또 육아를 하면서 나에게 인내심이 생겼다는 것도 나에게는 큰 한방이다.
모두가 다 취권을 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취권을 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한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포인트인 것 같다. 지금은 우리가 하수에 불과하지만, 세월이 더해지면 우리 또한 고수의 경지에 올라가 있지 않을까? 그게 취권이던 다른 권법이든 나만의 기술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