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너무 힘들다고 투정했는데...
회사 생활이 쉬워졌다. 이렇게 말하면 웃길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쉽게 말하면 편해졌다고 해도 괜찮겠다. 내가 나이가 많고, 나보다 어린 친구가 많기 때문에? NO!!! 절대 그건 아니다. 알다시피 요즘 90년 이후의 세대의 사람들은 70년 세대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고 더 겸손하게, 더 어렵지 않게 대해주려고 한다. (음... 이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도...ㅎㅎ)
5년 전과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기에 그때와 지금은 이렇게 다를까? 우선 그때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그때의 나는 골드미스였다. 세상에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다. 결혼 안 했다는 것만 빼면 굳이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할 일도 없었다. 대학원 졸업 후 한 회사에서 8년 차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도 익숙해졌다. 이젠 나름 거래처 사람들과도 친해져서 웬만한 실수도 하지 않지만, 실수를 하더라도 내 능력 안에서 커버할 수 있는 힘과 재량도 생겼다.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좋은 강연도 찾아다니면서 들었다. 나의 건강을 위해 검도도 열심히 배웠고, 영어, 일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찾아다니면서 공부했다. 재테크에 관심이 있어서 재테크 강의도 열심히 쫓아다녔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또 다른 교제를 하곤 했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나를 위한 선물로 해외여행도 다녔다.
어느 누구에도 꿇리지 않았다. 당당했고,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신은 나의 편이었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엄청난 자만심에 빠져 살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태어나면서 쥐어진 것은 없었지만 내가 노력하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내가 원해서 갖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럼 결혼 후에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갑자기 아이를 낳고 여러 사정에 의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20살 이후부터 계속 경제활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주어진 상이라 생각하고 지냈지만, 점점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해졌다. 좋은 회사에 가기 위해서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아이 낳고 재취업하려고 하니 대학원 나오고, 한 회사에 오랫동안 일한 나이 많은 여성은 부리기 힘든 사람이 되었다. 아이 때문에 9 to 6일을 할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잘되지 않았다. 자신만만했던 사람이 점점 자신이 없어져 갔다.
내가 경제 활동할 때는 돈의 힘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니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먹고사는 것 외에도 돈이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우울증이라는 것도 처음 걸려봤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산후 우울증이었다. 처음 겪어본 육아가 힘들었고,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뭐든 계획대로 움직였던 내가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 봐도 하늘의 뜻은 나와 달랐기 때문에 그것에 더더욱 좌절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 시댁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행복해지려고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내가 생각했던 행복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노력하면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노력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무언가 해보려고 하면 아이가 걸렸다. 정말 불공평했다. 진짜 열심히 하는데도 자식한테는 매일 죄인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늘 나에게 실패만 있고, 해도 안 되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무언가 작은 성공을 하게 되면 그게 그렇게 감사했다. 전에는 당연한 일들이 이제는 당연한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내게 온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골드미스 때는 내가 이 회사 아니어도 나는 충분히 이직 가능한 사람이고 어디 가서 무슨 일이라도 하면서 밥은 먹고 살 자신이 있었다. 내가 받는 월급은 내가 하는 일에 비해 작고, 회사에서는 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아 불만이었다. 그런 마음이 이따 보니 사람들도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경력단절 시기. 나의 힘을 기르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벌려봤기 때문에 안다. 자신의 사업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얼마든 간에 매월 같은 날 같은 금액의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라는 것을... 그때는 월급은 마약과 같은 거라 했는데, 아니다. 월급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해 주고,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주는 무기였다. 다른 사람들과 일해 보면서 직원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많은 실패 속에서 저절로 겸손해졌다. 그리고 내 뜻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내가 원해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 나의 상황, 그때의 일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서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점점 억울할 상황들이 익숙해져 갔다. 내가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 속에서는 눈물이 났다. 혼자 눈물을 닦는 건 20대 때 끝낼 줄 알았는데 40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길이 맞는 건가? 아닌가? 계속 갈팡질팡하면서도 꾸준히 무언가를 했었다. 하다가 안되면 다시 돌아오고, 또 안 되면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잘 가는 것 같다가 또 아닌 것 같으면 옆길로도 가보고... 이렇게 나는 내 삶의 권태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다.
그런데 삶에 있어서 재미있는 건 언제나 반전이라는 것이 있다. 그 방황의 경험들은 나를 숙성시켰고, 성숙하게 한 것 같다. 내가 방황했던 그 길들은 누군가에게 지도가 되고, 내가 흘렸던 눈물이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나처럼 아파하던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사장님은 내게 “노인의 말을 귀담아들어라”라는 말을 자주 해 주셨다. 그때는 이 모든 것이 잔소리로만 느껴졌고, 꼰대들의 이야기로만 생각되었던 말들이 이제야 그 말들이 이해가 갔다. 나쁜 일들이 생겨도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고, 언젠가 나는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인생이 꼭 나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들과 함께 온다는 것도 알게 되니 조금은 덜 흔들리는 것 같다. 이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사회생활이 조금은 편해진다.
나에게 해코지하는 사람도 그 사람만의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해해 주자. 너무 힘이 들어 자신의 삶에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일 뿐, 내게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사람들은 겉으로 모두 평화롭게 보여도 자신만의 문제를 하나씩 갖고 있다. 그러니 안타깝게 여기고 긍휼 하게 여겨주자. 지금 짊어진 그 짐이 너무 무거워 버겁다 생각이 들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노인들의 지혜를 빌려보자. 그 말이 얼마나 나를 위로해 줄지 경험해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