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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퀸스드림 Oct 30. 2020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된다.

내 걱정 해주는 사람 하나가 막 내 세상을 바꿔요

드라마를 잘 안 보는데 일 년에 한 개는 보는 것 같다. 동생이 추천해 준 “인생 드라마”는 꼭 보려고 한다. 이번 명절 연휴 때에도 봤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40편의 드라마를 2일에 걸쳐서 다 봤다. 그리고 남들보다 아주 늦게 ‘용식 앓이’를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눈으로 봤다고 하면 이제는 가슴으로 보게 된다. 누가 연기를 잘 하네 못하네,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그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보게 되면서 정말 드라마에 푹 빠져 보게 되는 것 같다.



동백이를 보면서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미혼모에 아들 하나 데리고 사는 모습에 나와 내 딸이 연상이 되면서 눈물이 났다. 딸을 향한 엄마의 극진한 마음에는 저절로 이해가 갔으며, 아무리 내게 미운 짓을 해도 아버지 얼굴 한번 못 보고 자란 내 아들을 극진하게 생각하는 용식이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가서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이불 뒤집어쓰고 눈물을 쏟아내며 봤다.







드라마의 명대사들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그중에 한 대사가 유난히 내 마음에 와닿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의 처한 상황들이 너무 힘들어서 푸념하고 있는 그녀에게 용식이는 동백이에게 자꾸 예쁘다고 해주고 장하다고 말해준다. 고아에 미혼모가 아이를 저렇게 잘 키웠고, 지금은 자영업 사장님까지 돼서 잘 살고 있다고... 남 탓 안 하고 치사하게 안 살고 남보다 더 착하고 착실하게 잘 살고 있다며 칭찬해 준다.



입바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해 주고, 그녀가 처한 상황들이 이해해 주려고 하는 마음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라는 그녀의 독백과 함께 그녀는 울면서 칭찬하지도 말고 편들어 주지도 말라고 한다. 죽어라 참고 있고, 이 꽉 물고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자꾸 칭찬해 주고 편들어주니까 마음이 울렁울렁한다며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킨 그 장면에서 나도 그녀와 함께 꺼이꺼이 울었다.






호주와 일본을 다녀와서 취업을 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먼저 돈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됐다. 30살을 넘기면 결혼하기 힘들다며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때 결혼을 했다. 30살 때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면서 결혼 대신 대학원을 선택했다. 대학원에 다니는 2년 동안만은 일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하면서 정말 나 자신을 위해서 2년을 사용해 보리라 생각했다.



대학원 합격증을 들고 온 날 생각이 난다.


“에그.. 시집이나 가지. 거긴 가서 뭐 하려고.. 너는 왜 이렇게 인생을 힘들게 사냐?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일본에 가려고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을 때도, 갔다 와서 내 힘으로 호주에 간다고 했을 때도 “축하한다. 잘하고 있다"라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반에서 11등을 했다. (그때는 한 반에 55명쯤 있었는데...) 너무 기뻐서 말했는데, 원래 학기 초에는 다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교 수준이 그렇지 뭐’라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다음 죽어라 공부해서 1학년 2학기 때는 난생처음 반에서 1등도 했고, 그 뒤로 오기로 2학기 내내 반에서 1등을 유지했다. 그런데 전교 등수가 왜 그러냐며 칭찬은커녕 아픈 소리만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친정엄마를 디스 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 내가 아이 낳고 육아를 해보니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그때의 엄마는 나와 22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엄마였다. 종갓집 장남에게 시집와서 아들 못 낳는다고 구박받고, 또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큰 사고로 장애를 입었으니 이 모든 것은 사람 잘못 들어온 며느리 탓이라는 억울한 누명도 쓴 사람이다. 남편 대신 가장으로서 일을 해야 했으며, 줄줄이 딸린 어린 딸이 3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 궂은 구박에도 도망가지 못하고 참고 살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억척스러운 3명의 시누이도 힘들었지만, 자신을 그렇게 구박했던 시어머니가 쓰러져 16년 동안 병수 발해야 하는 자신의 삶도 억울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다 이해가 간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학원 합격한 딸에게 등록금을 대주고 싶어도 여유롭지 못한 경제 사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일도 나중에... 나중에 돼서야 다른 친척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너희 엄마가 너 공부 잘한다고 엄청 자랑하더라..” 아마도 나를 잘 알았기 때문에 나의 오기를 일으키려고 내게 일부러 그런 것일 수 있다고 이해했다. 그때는 많이 속상했지만 나도 이만큼 나이 들고 또 내게 나와 꼭 닮은 딸이 있다 보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자신처럼 딸들은 힘들게 일 안 하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알콩달콩 애 키우면서 잘 살면 좋겠는데, 뭘 한다고 다시 일하러 나간다며 여기저기 애 맡기러 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 쓴다고 잠 줄여가며 아침에 휑한 얼굴로 손녀를 데리고 나타나는 딸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딸 셋 중에서 유난히 엄마 말을 듣지 않았고, 심하게 사춘기를 겪으면서 엄마한테 대들기도 많이 대들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본 두 동생들은 오히려 “큰언니처럼 저러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에 엄마한테 더 잘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모은 돈으로 일본으로 가겠다고 통보하는 딸이 예뻐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갔다 와서 자리 잡는 줄 알았더니 호주에 또 나가겠다고 하는 딸도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둘째는 직장 잡아서 가족 살림에 보탬이 되고 있는데 큰애가 돼서 자기만을 위해서 저러고 사는 모습이 엄마로서도 이해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딸 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딸이 억척스럽게 살더라도 그 일들이 잘 되거나 그걸로 성공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그걸로 위안을 받을 텐데, 뭔가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한 것도 없고, 엄마가 봤을 때 힘들어만 보이지, 스스로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딸을 보니 미치고 펄쩍 뛸 심정일 것이다. 게다가 옛날 말로 굶어죽기 딱 좋은, 돈도 안 되는 글을 쓴다고 하니 잘 사는 딸을 보며 억울했던 내 인생 딸들로 보상받고 싶은 것도 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할 수도 있다.



나의 입장에서만 봤을 때는 지금까지 잘 커온 나에게 한 마디의 칭찬 한번 해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할 때도 있지만, 엄마 입장에서 봤을 때, 엄마의 바람대로 잘 살아주지 않는 딸에게 좋은 소리가 나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나의 삶의 스토리도 드라마에 반영이 되다 보니 눈물 콧물 다 빼면서 보게 된다.






“나는 걸을 때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나를 고개 들게 해요.
사람이 그리웠나 봐요. 관심받고 걱정 받고 싶었나 봐요.
내 걱정 해주는 사람 하나가 막 내 세상을 바꿔요.”




어느 날 핸드폰을 사진을 넘기다가 문뜩 내 사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보다 살도 많이 찌고 웃을 때 주름이 보이고, 피부도 예전만 못하다고 생각하니 자꾸 아이 사진만 찍고 나는 거기서 빠지게 되었다.



내가 만든 모임이 있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1년 살기” 나처럼 심한 사춘기를 두 번째로 겪는 엄마들이 많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나 자신도 사랑하는 모임으로 1년씩 새롭게 삶을 정비하면서 어른들의 자기주도 학습을 이끄는 곳으로 함께 성장해 나아가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자꾸 내게 칭찬을 해 준다. 나한테 글도 잘 쓴다고 해주고 자꾸 예쁘다고 해 준다. 그리고 뭐만 하면 잘한다고 칭찬해 준다.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자꾸 잘한다고 하니 그 말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예의상으로 해 주는 말로 이해했다. 그런데 그 말을 계속 들으니 진짜 그런 사람이 돼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글도 열심히 썼다.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잘할 때까지 써야 할 것 같아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고, 생각도 많이 하면서 그것들을 글로 썼다.



내가 만든 모임이라 내가 앞에 설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일을 만들어야 했고, 그러려면 기획을 해야만 했다. 기획서를 작성해 보고 사람들과 움직여봤다. 그랬더니 성과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니까 되네...’ 내가 나 자신에게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결혼 후 내 삶은 엉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 못 살아온 거 같다고 여겨졌다. 인생길이 자꾸 꼬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보고 잘 하고 있고,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간다고 칭찬해 준다.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길 위에 뿌려진 눈물들을 보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며.... 지금 아주 잘 살고 있다고... 앞으로 너는 더 잘 될 거라고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잘못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나를 고개 들게 했다. 위로받고 싶었고, 잘하고 있다는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나를 토닥여주는 사람이 그리웠고, 관심받고 걱정 받고 싶었나 보다. 나에게 힘주는 사람들이 내 세상을 바꿔나가게 했다.



지금은 일부러 내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공주병 걸린 사람처럼 인스타그램에는 그날 나의 모습을 찍어 올린다. 그리고 나부터 나 자신에게 칭찬해 준다.


‘잘하고 있어!!! 너 아직 괜찮아!!!’



고마우면 고맙다고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사장님도 내게 말씀해 주셨다. 맞다. 예쁘면 예쁘다고, 잘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꼭 말해줘야 한다. 당신의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바로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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