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이 너를 짓누르고 있을 때 읽어보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돼.

by 퀸스드림


요즘 엄마는 가벼운 에세이를 많이 읽고 있단다. 그동안 자기 계발서라든지 경제 서적 위주로 읽다가 에세이에 한번 꽂히고 나니까 그 매력을 알겠더라. 사람들이 왜 에세이를 읽게 되는지... 일상에서의 감정들을 무시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었더구나. 처음에는 신선했고, 두 번째는 그들의 생각들을 읽고 싶었고 세 번째는 그들의 감정을 함께 동감하게 되더라. 당분간 엄마는 에세이의 매력에 푹 빠질 것 같다.



요즘 코로나로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서 그런지 위로하는 글의 에세이들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엄마가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감정은... “와~ 사람들이 정말 솔직하구나.”였어. 사람들은 자신의 우울함이나 힘든 것들을 잘 티를 안 내려고 해.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건 아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밝은 면만 보여주려고 그러는 것 같더라. SNS 상의 사진들만 봐도 다 행복한 표정, 밝은 모습들뿐이잖아.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약간 지친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런지 솔직하게 나 우울해요. 힘들어요하는 감정들이 솔직해서 좋더라. 이제는 그 힘듦이 더 이상 숨기는 감정이 아니라, 드러내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감정들이 나쁘지는 않더라. 오히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었어.





책 속에 에피소드 중 이런 게 있었어. 아이는 떼를 부리고 엄마는 몇 번이고 노력하는데 잘되지 않을 때, 찬장 속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려다가 그것이 깨져서 유리조각이 바닥을 덮은 거야. 아이는 그 소리에 더 놀래고, 엄마는 아이를 달래려고 가다가 유리조각에 발을 찔리게 되지. 피를 질질 흘리면서 아이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대. 그런데 순간 자신의 그런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아이와 함께 울었다는 내용이었어.



여기까지는 엄마랑 똑같은 경험이었어. 엄마도 너랑 그런 적이 있었거든. 순간 잊고 있었던 기억이 그 책의 내용을 보면서 떠오르는 거야. 맞아... 그때 나도 너를 달래려고 가다가 유리에 발이 찔려서 피가 났었더랬지. 그런 너를 안고 다른 방으로 가서 너를 달랬단다. 그리고 네가 잠잠해져서 엄마 발을 살펴보게 되었고, 다행히도 피는 났지만 깊숙하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아 간단히 치료한 후에 유리 조각들을 치웠었어. 그런데 그 유리조각들을 치우면서 복잡하게 흩어져 버린 유리조각들이 엄마의 마음 같아서 치우면서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작가랑 똑같더라. 아마 많은 엄마들이 한 번씩 이런 경험이 있었을 거야. 그런데 작가는 조금 달랐어. 남편한테 문자를 보내더라고.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집에 들어와서 유리 조각 좀 치워달라고... 그리고 자신도 아이와 함께 푹 쉬면서 감정을 다스렸다는 글이었어.



어떻게 보면 가장 평범한 육아일기 중 한편이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엄마는 왜 그 글이 유독 마음에 남았던 것일까?



엄마는 그 유리조각을 치우는 것을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단다. 그때 분명히 나 자신도 힘들었는데, 그게 뭐라고 아픈 발을 찔뚝거리면서 치웠을까. 왜 내 감정을 먼저 돌본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든 거야. 엄마는 어떻게 감정을 드러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아니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요즘에는 워낙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 둘 용기 내기 시작하는 것 같더라. 아마 엄마처럼 나이가 있는 분이라면 다들 “흩어져 있는 유리 파편을 먼저 치우는 게 당연하게 아니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데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돌볼 시간이나 여유가 주어진다면 다행이지만, 또다시 일상 속에 파묻혀 버리다가 결국에는 감정들이 압축되어 갱년기 때 한꺼번에 터지기도 하지. 그렇게 크게 한방을 터트리는 것보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일년살기 모임 때 한 분이 코로나 초창기 때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요!"라는 말을 해 주셨다. 그때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무나도 조용한 분이셨는데,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해 주시니 너무 좋았다.

그래... 저렇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왜 나는 하지 못했을까?



앞에 서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나? 아니면 나는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나?



실은 그때 엄마도 많이 힘들었단다.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로 인해 달라지는 세상이 무서웠고, 외출금지와 언제 감염될지도 모르는 그 현실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지더라. 점점 그 무게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1년을 넘어가게 되니 더 무거워질 때도 있었단다.



나는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 그러면 더 안 된다는 생각이 엄마를 누르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나는 장녀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무게감에 힘들다는 말 한마디 못하게 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짜증 났다. 나는 지금도 힘내서 살고 있는데 힘들다고 하는 내게 자꾸 힘내라고 하니 짜증이 나다 못해 화가 났던 적도 있었다. 그래 놓고선 내가 정말 미안해했었고 자책까지 했었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에게 내가 그랬다니... 아마 계속 참고 누르고 있었던 감정들이 그때 한번 터졌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그때를 뒤돌아보니 아무도 나에게 그런 책임감을 준 사람은 없었어. 엄마 혼자 갖는 감정이었지. 그리고 누구라도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런 감정 들 수도 있단다. 다만 엄마는 스스로가 그러면 안 돼!라고 하면서 감추었던 거야.





엄마가 보기에 너도 엄마를 참 많이 닮았어.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모범적으로 하고, 실수하는 자신에게 크게 자책하고,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무섭게 바꾸는 너를 보면서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하는 생각도 있지만, 어쩜 이런 면까지 엄마를 닮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만약 엄마라면... 그때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좀 어때...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아.” 유독 자기 자신에게만은 더욱 매서운 잣대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스스로를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단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나는 실수하면 안 돼!”라는 생각도 참 무서운 생각이야.



가장 먼저 너 자신을 사랑해 주렴. 너 자신을 용서해 주고, 괜찮다고 말해줘.

자기 자신에게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엄마의 감정을 너무 무시하면서 살았던 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가 나를 너무 위로할 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어제오늘 읽었던 책들이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책임감을 갖고 사는 건 참 좋아. 하지만 그것이 네게 무거운 짐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아.



솔직한 너의 모습도 사랑하는

엄마가





PS: 아직도 옷을 뱀 껍질처럼 벗어 놓지는 않겠지? 그런 건 그때그때 정리하는 게 좋아. 말로 하면 잔소리라고 할까 봐 글로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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