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때문에 네 인생을 망치지 않기를...
엄마는 드라마는 거의 안 보는데 가끔씩 네 이모들이 “언니! 이건 꼭 봐야 해. 인생 드라마야!!”라며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는 드라마는 날 잡아서 한꺼번에 본단다. 한국 드라마가 너도 알다시피 정말 재미있게 잘 만들잖아. 그래서 한번 빠지면 그 중독에 헤어 나온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 그래서 일부로 보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주변에서 추천해 주는 것은 꼭 보려고 해.
드라마도 삶의 낙이 될 때가 있거든. 타인의 삶을 통해서 내 삶을 보게 되고, 또 엄마는 못하는데 드라마 주인공들은 찰지게 말하는 것을 볼 때 대리만족이 되기도 하더라. 이제 엄마 나이에 러브라인은 없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그런지 젊은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를 볼 때면 예전과 다르게 심쿵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엄마 미소 지으며 뿌듯하게 바라보는 옆집 아줌마의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게 되더라. 인정하기 싫은데, 이럴 때 보면 엄마는 나이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며칠 전에 본 드라마는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였어. 거기서 또 한 장면이 엄마의 마음에 남더라. 간암에 걸린 여성이 있었는데 남편에게 간 이식을 받고 치료 중인 여성이 있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이 다른 여성과 바람이 나서 미안한 마음에 자신의 간을 떼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정말 드라마틱 한 내용 아니니? 그 여성은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 더 이상 약을 먹지도 않고,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 가면서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는 상황이었어.
더 이상 살 의욕을 잃은 여성에게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더라.
“남편분 큰 결심해 주신 겁니다. 간이식해 준 거, 그 의도가 뭐든 간에...
정말 대단한 일 하신 거라고요. 목숨 걸고, 기증하신 거니까... 그런 남편 이제 그냥 알아서 잘 살라고 하시고 이제 어머니 인생 사세요.
저도 와이프 바람 나서 이혼했어요. 밤새 일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와이프가 제 친구 남편이랑 바람이 났어요.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남들 보기도 너무 창피하고 내 인생 왜 이렇게 꼬이나 싶어서 죽겠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아까웠어요. 걔 때문에 내 인생 이렇게 보내는 게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어떻게 다시 찾은 건강인데,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약 드시고 악착같이 건강 회복하세요. 어머니 인생이잖아요.“
- 슬기로운 의사 생활 7화 중에서-
엄마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어. 너무나도 미운 사람.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미워하게 되는 사람. 그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엄마 스스로가 너무나도 힘들 정도로 미운 사람이 있었단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자신의 살 뿐만 아니라 삶까지 깎아먹는 행위이거든.
미워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더라. 그게 심해지면 자기 자신까지 헤치게 되지. 누구한테 시원하게 말 못 하고, 이러고 사는 자신이 미워지는 거야. 나중에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지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정확히 그 사람이 왜 미운지도 모르게 미워지게 되더라.
너무나도 힘들었고, 속상했고, 차라리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드라마 속의 그 여인처럼... 사람이 한 번 우울증에 빠지면 끝도 없이 추락하잖아. 누군가를 미워하는 그 마음이 나의 생명줄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어.
어느 날... 갑자기 이러고 있는 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속상해하는 시간이 아깝고, 죽으려고 했던 내 자신이 불쌍하더라. 나도 내 인생 살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 그 사람 때문에 내 인생 망치고 싶지 않아 더 열심히 살았다. 아니 더 독하게 살았다. 보란 듯이..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살았어.
시간이 한참 흘러서 엄마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는 그 사람이 한편으로는 고맙더라. 덕분에 좀 더 괜찮은 내가 된 것 같아서, 그리고 덕분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 같아서,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법과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서 감사하더라.
그렇다고 너에게도 엄마와 같은 경험을 해 보라는 것은 절대 아니야. 오히려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너무 힘든 경험이었기 때문에 내 딸아이에게만큼은 건너뛰게 하고 싶거든.
살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단다. 그 사람들 중에서 네 마음에 꼭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디서 저런 인간이 있을까!!! 하며 네 속을 태우는 사람도 분명 만나게 될 거다. 그 사람 때문에 네 인생을 희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미워하는 마음이 너의 생명줄을 갉아먹게 놔두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네 인생을 망치는 그런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툭툭 털고 일어나렴.”이라는 말은 못 하겠다. 그게 턴다고 털리는 먼지도 아니더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라”라는 말은 더더욱 못하겠다. 나도 못했던 일을 네게 시킬 수도 없지. 피할 수도 없고, 감싸 안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 때문에 네 인생이 파괴한다면 더 억울할 거야. 그럴 때는 보란 듯이 더 잘 살아. 그 사람을 지렛대로 삼아서 더 크게 성장하렴. 그래야 나중에 그 사람도 그리고 너 자신도 용서할 수 있단다.
엄마도 그때는 어렸어. 마음도 좁았고, 엄마가 조금 더 이해심이 있었더라면 그 정도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인생은 정말 뜻대로 되지 않더구나. 열심히 살아도 그럴 수 있단다. 그때는 너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해 주렴.
네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싶은 엄마가
PS: 너 고기 먹을 때 소금을 너무 많이 찍어서 먹더라. 짜게 먹으면 몸에 안 좋은 거 알지? 말로 하면 잔소리라고 할까 봐 글로 쓴다. 알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