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각서

시아버지의 약속과 시어머니의 현실, 그리고 그날의 기막힌 우연

by 설리원

남편이랑은 정말 우연히 만나서 짧게 ‘일방적인’ 교제가 시작됐어.

너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만남이어서 우리 부모님은 처음부터 반대하셨지. 남편의 직업도 맘에 안 든다고 하시고... 하지만 둘이 노력한 끝에 부모님 반대가 좀 풀리더라. 한 60~70% 정도는? 그래서 드디어 남자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식사하는 날이 왔지.

근데 그날, 또 다른 난관이 찾아온 거야.


남편이 아빠랑 같이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부친 존함이랑 본인 이름, 본적지, 그리고 현재 사는 주소를 한문으로 적어 보게나."

라고 하시는 거야. 그때는 학교에서 한문을 배우지 않아서 몰라도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었거든. 남편은 아는 대로 스케치북에 열심히 한문을 써 내려갔어.

잠시 후, 아빠가 그걸 받아보시더니 눈이 번쩍 뜨이시는 거야.

“이거 참, 기막힌 우연이구먼...” 아빠가 말씀하시길, 남편 아버지의 이름이랑 한문이 본인의 오래된 친구랑 완전히 똑같다는 거야. 고향도 같은 곳이라고 확인하시더니 갑자기 대화가 뚝 끊기고, 식사 자리는 어색해졌지. 결국 남자친구는 조용히 돌아갔어.


며칠 후, 시아버님이 남편이랑 시아주버님을 데리고 우리 집에 다시 찾아왔어.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어. “아이들이 서로 좋아하는데, 시어머니 자리가 문제라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절대 시집살이로 힘들게 하지 않겠네. 각서라도 쓸 테니 귀하게 키운 딸을 우리 집으로 보내달라네.”


사실 각서를 쓰진 않았지만, 그 말씀이 꽤 진지했었어. 그 후 얼마 지나 소박하게 약혼식을 했지. 그런데 그날의 ‘각서’가 시어머니 행동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어버렸다는 건... 뭐...


#결혼 #시집살이 #그때그시절 #시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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