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개장사도 무섭단다 우는 개는..

인정사정없다.

by 설리원

시아버님의 고향은 강원도 주문진 이다. 6.25 사변때 참전 하셨고 육군 중사로 훈장을 두개나 받으시고 전역 하셨다. 섬진강 근처 헌병대에서 근무하시다가 하동이 친정이신 시어머니와 혼인하셨다. 전쟁중에 부산으로 피난을 오셨다가 정착하신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 부부도 맺어졌던걸까.


실제로는 받은적도 없는 그 각서 사연으로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가 정당화되었고 난 시아버님의 애정 넘치는 빈번한 호출로 시댁에 머무르는 동안은 거의 혼이 반쯤은 빠지곤했다.


그러던 어느날 강원도고향에 문중 묘사를 지내러 2박 3일 일정을 부부동반하여 다녀오실 일이 생겼다. 출발 이틀전 나는 시댁으로 갔고 시아버님만의 지극한 손주 사랑을 느끼며, 돌아오실때 까지도 시댁에 계속 머물고 있기로 약속을 드렸다. 먼 여정을 위해 모든 준비를 즐겁게 차근차근 열심히 해드렸다. 거의 40년 전이니 부산에서 주문진까지 시외버스가 거의 8시간이상이 걸렸으니 꽤나 먼 여정이였으리라.

시어머님이 안계시는 시댁에서의 여유로움을 상상하며 혼자만의 콧노래를 부르면서 말이다.


사실 시어머니만 빼면 시누이 둘과 시동생 둘, 그들과는 꽤 유대관계가 좋았다. 특히나 막내 시동생이 국민학교 6학년일때 결혼을 했으니 자기누나들 보다 나를 더 따르곤 했다.


시부모님의 출발 당일 아침, 나의 즐거웠던 상상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시어머니께서 장염증세로 화장실을 분주히 드나들기 시작하셨다. 장거리 버스로 움직여야하는 상황에 결국 시어머니를 남겨두고 시아버님 혼자 출발을 하셨다. 시어머니는 병원을 급하게 다녀오시고는 증세가 눈에 띄게 호전되셨다. 꾀병이셨던걸까.


그 시절 시댁은 마당이 꽤나 넓은 집이였어서 개를 서너마리쯤 키우셨는데 다들 도사견이라 덩치가 장난이 아니였다. 불과 한달 전에 그중 제일 나이가 많은 개 한마리가 새끼를 낳았더랬다.

시어머니의 계획은 그러했다. 아버님이 계시지않는 틈을 타서 그 새끼들을 처분하여 비자금을 챙기는 것이였다. 새끼 가격이 꽤나 나갈때라 13마리나 낳았으니 나름 목돈 만질 좋은 기회를 어머님이 놓칠분이 아니셨다.

그중 10마리와 어미개를 같이 처분(?)하시고 드디어 아버님이 돌아오시는 날이 되었다.


시아버님께는 그 시절 한창 흔했던 개도둑 핑계를 대셨다. 아버님이 돌아오시고 이틀 즘 지났을까. 개를 사간 그분이 어미개를 끌고 다시 집을 방문하신것이 아닌가.


"개 값을 돌려받지 않을테니 어미개는 돌려주겠어요.. 개 장사 20년에 눈물 흘리며 우는 개는 처음봐서 무섭네요.."


개 장사가 돌아간 후 잠깐 동안 적막하고 살벌한 분위기가 흘렀다. 시아버님의 낯빛이 창백하다 못해 시퍼렇게 변해갔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시어머니는 갑자기 내 팔을 낚아채고 조용한 곳으로 끌고갔다.


"애미야, 나좀 살려다오! 네 아버님은 너라면 끔찍하잖니.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줘야한다!!"


어느새 나는 시아버님 앞에 앉아서 어머님 대신 용서를 빌었다. 시어머니는 어느새 보이지 않으셨다. 그 시간동안 내가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드렸는지 기억도 안나니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는 고맙다는 한마디만 하시고는 역시나 못된 시어머니로 돌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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