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가스에 취약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아버님의 호출로 시댁에 갔다.
시아버지는 출타 중이시고 시어머니만 계셨다. 점심을 같이 먹고 큰애를 재우고 나니 둘째도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18개월 연년생이니 오죽했을까.
시어머니는 손주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으셨다. 아니 있다고 해도 그 손주들의 엄마가 나였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특히 무관심하셨다. 그러나 제삼자 즉 가족이 아닌 타인들 앞에서는 엄청 이뻐하는 시늉을 하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면 완전 태도가 바뀌었다.
시부모님이 사시던 곳은 한 울타리 안에 내 연배의 새댁들이 세 가구 살고 있어서 내가 시댁에 들를 때면 번갈아가며 우리 아이들을 봐주기도 했다. 시댁에 오면 늘 시집살이를 하니 그런 나를 동생같이 안쓰럽게 생각해서였을까..
하필 이날은 다 같이 5일장에 구경을 나가고 없었다. 나는 칭얼대던 둘째를 업고 점심설거지를 끝내놓고 부엌과 앞마당 청소를 했다. 둘째 아이가 8월생인데 10개월 때쯤 되었을 때니 6월 즈음 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는 수세식이라도 쪼그리고 앉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였는데, 평소에 변비가 심해서 화장실에 오래 있는 편이었다. 친정아버지는 학교 걸상(의자)을 구해다가 엉덩 부분을 뚫어서 좌식 변기 위에 놓아주셨더랬다.
시댁에는 그때까지도 재래식 화장실이라 그것 또한 불편했다. 그렇지만 용변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안되니 볼일을 보러 가는 수밖에. 앗차, 한참 동안 기어 다니는 아이를 혼자 둘 곳이 없었다. 물론 시어머니가 계셨지만 무관심하시니.. 그래도 급한 상황이라 잠시만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어머니~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데 아이 좀 봐주세요!"
시어머니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난 육 남매를 키우면서 다 내가 업고 볼일을 봤다! 허리도 아프고 고스톱 치러 옆집에 가야 해서 안돼!"
그러고는 도망치듯 가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아이를 업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날은 더웠고 역시나 시간이 흘렀다. 등에 업혀서 칭얼거리던 아이가 곧 조용해졌다. 잠이 든 것은 아닐 텐데...
얼른 나와서 아이를 등에서 내려보니 얼굴빛이 이상했다.
실신을 한 것이다. 푸세식 화장실 특유의 가스를 요즘 사람들은 알려나..
그 가스에 질려서 질식한 것 같았다. 똥독에 말이다.
나는 잠들어있던 큰아이를 들쳐 엎고, 기절한 둘째를 안고 병원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한 시간쯤 흘렀을까.. 아이가 깨어났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과 내 처지가 기가 막혀 설움에 받치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내 나이 고작 25세. 한창 직장 생활하고 20대를 즐기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나는 왜 여기 이런 모습으로 있는 건지.. 참 슬펐다. 그것도 잠깐..
뭣도 모르는 큰아이는 동생이 깨어나니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느샌가 내 입에 또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