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부러진 뼈는 찬물에 담그면 안돼..

다치면 병원으로 가야합니다.

by 설리원

연년생 아이들이 고만고만할 때, 시아버지가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부르시면 일주일에서 보름정도 시댁에 머물다가 오곤 했다. 우리가 살던 곳은 부산이었는데 그 당시 내 남편은 인천에 현장 근무를 나가있었다.


그날도 시어머니는 남동생들과 고스톱을 치고 놀고 계셨다. 유일한 취미였다. 며느리가 왔으니 이제 작정하고 놀 생각에 나는 밀린 집안일과 심부름을 해야 했다.

둘째 딸아이가 4살 때였으니 아직 낮잠을 못 자면 칭얼거렸는데 나에게 담배와 커피 심부름을 시켜야 했던 시어머니는 아이에게 동전 몇 개를 쥐어주며 동네 구멍가게에 내보냈다. 한동네 옆집 아이들을 다 불러서 과자를 사러 보낸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나가고 5분 정도 되었나.. 밖에서 다급하게 뛰어오는 한 아저씨의 품에 딸아이가 안겨있었다.

자신의 오토바이에 다리를 부딪혀서 나뒹굴어졌다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안고 뛰어온 것이다. 들여다보니 복숭아뼈 둘레로 이미 부어올라있었다.

모두 병원에 데려가라고 소리쳤지만, 시어머니는 “부었을 땐 찬물에 담가야 해”라고 우기며 큰 대야에 찬물을 담아 억센 손으로 막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딸은 고통에 자지러졌고, 나는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아이는 급기야 실신을 했다. 그제야 내 눈이 뒤집어졌다.

시어머니를 뒤로 밀쳐내고 대야에서 아이를 들어 올리고 그냥 무작정 뛰었다. 택시가 잘 없던 때이기도 했고 동네가 한적한 곳이라 얼마나 뛰었는지 모르겠다.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갔다.


역시나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니 촛대뼈가 뚝 부러져있었다. 그냥 댕강 부러진 그 뼈 위로 시어머니가 어찌나 문질렀는지 부러진 뼈들이 온갖 어긋 났다 했다.

아이의 다리는 허벅지 끝까지 석고로 감싸야했고, 몇 개월간 깁스를 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시어머니는 "내가 6남매를 병원 한 번 안 가고 다 내 손으로 낫게 했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시어머니와 처음으로 제대로 맞섰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분노와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며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전화를 끊자마자 5시간도 안 되어 인천에서 부산까지 달려왔다.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우리 아이 병신 만들 뻔했다!"며 소리를 질렀고, 그제야 시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그 일 이후 남편은 이틀 만에 사표를 냈다. 그도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서야 딸아이의 뼈는 완전히 붙었고, 아이는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시어머니는 여전히 당신의 방식을 굽히지 않는 분이었다. 아이가 실신을 해도, 본인의 손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그 확신이 참으로 무서웠다. 말도, 행동도 우겨대면 그만이라는 생각. 나는 그런 그녀를 더 이상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그날의 사건은 단순히 한 번의 사고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의 그 "나는 옳다"는 확신은 가족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무기였다. 내가 그때 왜 시어머니의 잘못된 행동을 그냥 지켜봤는지, 그건 아마도 내가 "시어머니니까"라는 이유로 그녀를 제지하지 못했던 내 안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누구도 무조건 옳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서도 과감히 반대하고 바로잡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시어머니는 결국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02. 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