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부 깜지
주방은 이제 내 공부방이, 식탁은 내 책상이 되었다. 신문을 읽다가, 책을 읽다가, 또 글을 쓰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는 깜지가 누워있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두꺼운 담요로 덮인 깜지의 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오르락 내리락하는 작은 몸통 새로 얕은 숨이 느껴진다. 숨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으면 조바심이 나 괜히 거실로 걸어가 숨을 살핀다. 확실한 숨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꾸역꾸역 할 일을 한다. 욕심이 참 끝도 없었는데 지금은 하나밖에는 남지 않았다. 깜지가 편안하게 눈 감는 것. 그저 오늘같은 하루를 보내다가 고통 없이 무지개다리로 훨훨 뛰어가는 것.
이런 마음을 가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깜지는 걷지 못한지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 깜지가 이만큼 아프기 시작했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매순간 울음을 참았다. 깜지가 있는 집 안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러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도,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잠을 자려 누워서도, 작은 움직임에 중간중간 깨서도, 눈 앞에 깜지가 있건 없건 목구멍을 넘어 자꾸만 올라오는 울음 때문에 눈이 매일매일 매웠다. 작년 8월 28일의 첫 경련을 시작으로 깜지는 조금씩 우리가족이 당연하게 알던 깜지가 아니어만 갔다. 처음 보는 모습들이 낯설었다. 당연하게 걷고 뛰던 두 다리는 이제 겹겹이 쌓인 푹신한 담요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뭔가 되지 않을 때면 심술이 나 일부러 다른 곳에 소변을 봐놓거나 배변을 해 깜지가 꾸중듣는 날들은 이제 없다. 시간에 맞춰 배변을 도와주러 한껏 가벼워진 몸을 안아들고 해가 쏟아지는 창가 패드로 데려가면 그 뿐이다.
글로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문장들로 남기면서 마음은 한 번 더 아릴 것이었고, 나중에 기록들을 보면서는 구체적으로 아플 것이기 때문이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하는데,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을만큼 아플 날도 적을 것 같았다. 또 내 작은 털뭉치와의 마지막을 인정하는 과정 같았기에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쓰는 것은, 어쩌면 후에 덜 아프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 순간들을 하나하나 깊이 아로새겨 평생 잊지 않고 아프고 싶기 때문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