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지 않는 거북이

[장애인이라 죄송합니까] 프롤로그

by 제이드

숨 쉬지 않는 거북이

[들어가며 - 화자는 선천성 소아 갑상선항진증을 갖고 태어났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자랐고, 생의 대부분을 아팠으나 그 고통에는 이름이 없었다. 학교는 내게 물 속이었다. 감옥이었다. 교육이 아니라 계엄이 있었다.

장애 진단 전에도, 등록 후에도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1. 나는 거짓말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따뜻한 남쪽 광주의 학교에서, 유일한 시외 통학생이었다. 장성에서 통학하는 데 왕복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이 걸렸다. 집까지 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번째는 버스를 3번 타는 것.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외곽에서 16번 버스로 갈아탄 뒤, 광주와 장성 경계의 버스 종점까지 간 다음, 다시 114번 버스로 갈아탄다. 16번 버스의 배차 간격은 30분. 114번 버스는 2시간 30분이었으나, 어떨 때는 2시간, 어떨 때는 3시간이었고, 날이 궂는 날이면 하루에 두 번만 운행하거나, 아예 운행하지 않기도 했다. 학교 앞 771번 버스 기사는 자주 환승 코드를 찍어주지 않았다. 젊은 학생이 고작 10분 거리를 버스로 앉아서 가면서 환승까지 하는 것이 심히 못마땅했다. 16번 버스는 자전거를 탄 남고생들로 늘 붐볐다. 114번 버스는 시외 운행을 하는 버스였지만, 종종 추가 요금을 받았다. 시외까지 가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마을 어귀까지 가는 유일한 버스였다. 나는 항상 시외로 갔는데, 어째서 어떤 날은 학생 요금을 받고, 어떤 날은 성인 요금을 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옆의 남고생들은 추가 요금을 내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추가 요금을 내지 않았다. 이장님도, 마을 수의사인 이장님 아버지도 요금을 내지 않았다. 경로 우대라고 했다.

두번째는 걷는 것이다. 나는 오래 걸려도 걷는 것을 더 좋아했다. 16번 버스 정류장까지 30분, 버스 종점에서 집까지 1시간을 걸어야 했다. 외삼촌이 생일 선물로 준 오래된 아이리버 MP3 이어폰을 꽂고 길을 걸었다. 가방이 무거워 자주 내려놨다. 가드레일의 달궈진 쇳덩이는 뜨거웠고 여름 냄새가 났다. 나는 실로폰을 두들기고 뛰어다녔다. 여학생들은 단화를 신어야 했다. 도로는 있었지만 인도는 없었다. 축사에서 흘러나온 오수와 거름으로 쓰려고 쌓아놓은 짚단과 소똥, 누가 버리고 간 연탄재와 주인 없는 들개들이 있었다. 들개가 단화를 물어간 날 나는 쫓아가지 않았다. 다음날 털신을 신고 갔다가 복장 불량으로 벌점을 받았다.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BoA의 <아틀란티스 소녀>나 거북이의 <빙고>를 들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다 보면 뜨거운 태양과 파란 트럭과 사늘한 바람만이 있었다. 온동네가, 온세상이 내 것이었다. 아랫마을 아이들은 나를 ‘머리에 꽃 꽂은 언니’라고 부르곤 했다.

#2. 교사들은 공부할 시간은 찾으면 어디에나 있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나 길을 걸으며 영단어 한번이라도 보는 건 네 의지에 달렸다고. 114번 버스는 언제나 붐볐고, 거의 항상 자리가 없었다. 시내를 달리는 버스들처럼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콩나물 시루는 아니었다. 자전거와 짐 보따리들이 가득한 울퉁불퉁한 선별진료소였다. 시장에 내다 팔려고 들고 온 콩나물과, 팔다 남은 누렇게 뜬 시금치, 덜 마른 빨간 고추, 한여름 열기에 푹 쩔은 생선 냄새가 앉아있었다. 어린 게 감히 앉아 가기에 눈치가 보여서, 눈치껏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가야했다. 종종 같이 탄 내 자전거는 눈치 없는 노란색에 바구니가 달렸다. 남학생들처럼 접이식이 아니었다. 가끔 영단어장을 펼쳐들었지만 시골 버스 안은 너무나 울퉁불퉁했고, 나는 고등어가 흘러넘치지 않게 붙잡아야 했다. 고등어 대신 고춧가루가 묻었다. 나는 부끄러워져 슬그머니 단어장을 치웠다. 유연하고 잘 접히는 남고생들과 치열하고 지친 노인들 틈바구니에서, 접히지도 않으면서 자리를 찾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일이었기에.

우리집은 비가 새고, 연탄을 때고, 쥐가 돌아다녔다. 스카이 라이프가 없으면 나오는 채널은 세개 뿐이었고, 그나마도 흑백으로만 나왔다.

숙제를 하려고 책을 펴고 스탠드를 켜면 쏟아지는 쌀알 같은 날타리와 벼멸구들이 경멸스러웠다. 끈끈이를 놓아도, 손으로 휘저어도, 볼펜으로 꾹꾹 눌러써도 벌레는 없어지지 않았다. 가난과 불행은 언제나 어둠처럼 스스로 찾아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숙제를 낼 때마다 책과 글자 사이에 또렷이 박힌 벌레 시체가 수치스러웠다. 아무리 감아도 떡진 머리. 담임은 내게 머리 좀 감고 다니라고, 그러니까 아무도 너랑 친구하고 싶어하지 않는 거라고 말한다.

#3. 아침엔 늘 게을렀다. 새벽 5시면 닭과 오리가 울고 트랙터가 돌았다. 오리는 배가 고프면 개보다 시끄럽다. 커다란 빨간 고무 다라이에 물을 받았다. 1시간쯤 물을 틀어놔야 온수가 나온다. 지하수라 비가 온 뒤면 흙탕물이 섞여 나왔다. 아침에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쥐와 토끼와 함께 놀고 닭처럼 나는 법을 배운다. 담임은 편하게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 주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했다. 아침에 탈 수 있는 버스는 두 대 뿐이었다.

매일같이 지각이 자연스러웠다. 내게 꼭 맞춘 옷처럼 편안했다. 어떤 날은 큣대로 맞고, 어떤 날은 각목으로 맞았다. 다른 날은 주먹을 쥐고 벽을 때렸다. 손등이 까지고 피가 터져야 끝이 났다. 맨손으로 락스 청소를 하고, 찬물에 걸레를 빨았다.

동생은 바퀴를 밀어줘야 굴러갔다. 밥상을 차리고, 밥을 떠먹이고, 옷을 갈아입혀주고, 흩어진 다리와 바퀴들을 그러모아 차에 실었다. 닭, 오리, 토끼, 개들을 먹이고, 토끼 풀을 뜯고, 연탄 불을 갈았다. 연탄재를 버리며 학교 명찰도 버렸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잡히는 모든 것들과, 나를 붙잡으려고 하는 모든 이들을 던진다.

나는 천천히 물속을 걷는다. 모두들 수영을 하는데, 나만 아가미가 없다. 나에게 주어진 건 딱딱하고 무거운 등딱지와 적당히 딱딱한 배, 네개의 다리, 날카로운 발톱, 단단하지만 작은 입뿐이다. 물속은 너무 깊다. 내 등딱지는 너무 무거워서 자꾸만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기고 밀어넣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4. 다들 내게 더 열심히 수영하라고, 가라앉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내 핑계를 용납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내 핑계이고, 변명이라고. 숨 쉬지 않기로, 가라앉기로 한 것은 내 선택이라고.

무거운 등딱지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매일같이 책가방을 메고 산을 올라야 했다. 그것은 책가방이기보다 시시포스의 바위였다. 가라앉는 건 아주 쉬운 선택이었다.

무단외출로 걸렸다. 거짓말을 해보았지만 곧 들통이 났다. 반 전체가 단체기합을 받았다. 나 때문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고 무릎을 꿇었다. 다른 애들은 잘못이 없었으니까. 담임은 내가 쓴 여러 장의 반성문을 들이밀며 찢어버리겠다고 했다.

왜 거짓말을 했는지 물었다.

점심 때 보건실에 갔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약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 심장이 미친듯이 아프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시 심장이 마비될까 두려웠다. 친구가 가진 약을 빌렸다. 담장을 넘다 다리를 삐었다. 친구까지 위험하게 할 수 없었다.

사실을 말했을 땐 이미 모든 게 늦어있었다. 어차피 그것이 사실이 아닌 걸 나도 알았다.

담임은 교칙을 어긴 벌로 10대, 거짓말을 한 벌로 10대, 총 20대를 맞으라고 했다. 자세가 무너질 때마다 처음부터 리셋이라고 했다. 발바닥을 올렸다. 어쩐지 수치심이 드는 부위였다. 나는 또다시 허우적거렸다. 내가 왜 맞아야 하는지, 맞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잘못에 대한 벌을 달게 받겠다는 말은 더없이 진실이었으되, 나에게는 내 벌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묵묵히 벌을 받을 묵비권만 있었다.

부어오른 발을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나는 담임의 인내심을 시험해본다. 설마 진짜로 처음부터 다시 때리겠어. 담임도, 큣대도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내 거짓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했다. 맞다가 주저앉고, 맞다가 무너졌다. 그 때마다 벌은 계속 늘어났다. 나는 우는 척을 해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역시 담임은 내 거짓말을 꿰뚫어 본다. 못 참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다. 100대가 넘고서부터는 더이상 수를 셀 수도 없었다. 담임이 큣대를 내려놓자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벌을 서고, 반성문을 썼다.

벌점을 받았다. 월담 3점, 무단외출 3점, 지각 2점, 교사지시불이행 2점. 벌점이 10점이 넘으면 부모님을 부르고, 20점이 넘으면 징계위원회가 열리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만 10점을 쌓았다. 정학을 당하지 않게 매일 남아서 청소를 해서 벌점을 까라고 했다.

1점을 까려면 2시간을 벌 청소를 해야했다. 2시간 벌을 받고 돌아가면 버스 안은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자전거 탄 남고생들로 가득했다. 자리가 없어 버스 한대를 그냥 보내야 했다. 30분을 기다리며 숙제를 했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책가방을 메고 느릿느릿 걸었다.

벌 청소를 계속 빠져서 또 벌을 받았다. 차라리 매를 맞고 싶은데 자꾸만 벌을 세우고 벌 청소를 시켰다. 집에 가는 시간은 계속 늦어졌다. 교사들이 나를 포기해주길 바랐다. 욕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반항을 하고, 의자를 집어던졌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들의 기대가 매질보다 더 아팠다.

#5. 발은 계속 낫지 않았다. 멍은 한 달 넘게, 붓기는 6개월이 갔고, 발을 디딜 때마다 아파서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고 피곤해 수업 시간에 자꾸 졸았다. 벌을 받으면서도 졸았다.

시시포스가 참 편안해 보였다. 나의 죄도 신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 해 겨울 나는 눈이 멀었다. 시각장애인 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담임은 말했다.

‘학교 편하게 다니려고 꼼수 쓰는 애들은 많이 봤지만 살다살다 특수학교 가겠다는 애는 네가 처음‘이라고. 부담임은 ‘너같은 애는 특수학교가 아니라 삼청교육대나 해병대캠프에 보내야 정신차린다’고 했다. 둘은 모두 과학을 가르쳤다. 교육은 아주 과학적이었다.

2년 뒤 소아 류마티스 진단을 받았다.

그 이듬해에는 침대에서 자다가 척추가 부러졌다. 소아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다.

학교는 부지런히 내 부서진 뼈를 훔쳐갔다. 내 한쪽 다리는 영원히 짧아졌다.

학교는 발이 없어 그 자리에 있는데, 나의 네개의 발은 왜 도망치지 못하지? 나에게는 발톱도, 날카로운 이빨도 있었다. 하지만 내 등딱지가 나를 무겁게 잡아눌렀다. 그 시간에 나를 붙든다.

내게는 여전히 아가미가 없다. 거짓말을 하는 아가리만 존재했다.

나는 여전히 아무도 물지 못해서 나를 물어뜯고, 가르고, 내장을 파먹는다.

그들은 말한다.

“왜 숨 쉬려는 노력을 하지 않니?”

이제 내게는 형벌이 없다. 계속해서 물을 먹고 사래가 들린다. 누구도 내게 매를 들지 않아서.

머리 속에 지푸라기가 가득차고 벌레가 윙윙 운다. 병원에서는 영양실조라고 했다. 4일만에 5킬로가 빠졌다. 1년간 정성 들여 요리해서 먹여키운 내 살들이 4일만에 사라졌다.

이제 나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숨을 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세상은 너무나 다정하다.

우리 동네에는 학생이 없었다. 윗동네에는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다. 우리는 폐교 예정인 학교 운동장에서 자주 놀았지만,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는 없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운동장은 곧 풀숲이 빽빽이 우거졌다. 우리는 풀을 뽑고 쓰레기를 주웠다. 네가 오래 살아있기를 바라서.

구름 타고 세상을 날아도

지금처럼 좋을 수는 없을 거야 울랄랄라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어떤 게 행복한 삶인가요 (아싸!)

사는 게 힘이 들다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bingo! (bingo!)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부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이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 대로 (bingo!)

거북이 <빙고>



[글을 마치며 - 화자는 만 15세, 고등학교 입학 3주를 앞두고 실명했다. 1년 뒤 만 16세에 류마티스성/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쇼그렌증후군을 진단 받았다.

내 글의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경악스럽고 믿기 어렵다 해도 이해한다.

상상과 비유를 사용한 글을 프롤로그로 배치한 이유이다.

이후 연재될 글에서는 좀더 사실적인 사건들을 다룰 예정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 글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 개인의 몫일 것이다.

스승의 날은 화자에게 여전히 아주 아프고 슬픈 날이다.

학교에서 생존해낸, 그리고 현재도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모든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교직원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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