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_그들만의 세상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요새 업무 때문에 꽤 많은 단편영화를 봤다. 대부분의 단편이 상업영화 수준의 때깔을 보여줬다. 값비싼 카메라와 장비들로 찍어낸 (독립영화계에서) 유명한 배우들이 보여주는 안정적인 연기가 담긴 작품들. 그러나 텅 빈 느낌이다. 감히 평가하자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정작 알맹이가 없는 그런 영화들의 연속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화면의 미학, 미쟝센이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점이라지만


결국 극영화의 본질은 이야기가 아닐까?


홍상수 감독의 최근 작품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앞서 말한 단편영화들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영화이다. 화면의 미학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이야기에 집중한 그런 영화. 초점조차 나간 것 같은 저화질의 화면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평범하면서도 흥미진진해서 재밌게 보았다. 흔한 단편영화의 수준을 뛰어넘는 화려한 화면을 보면서도 졸음을 참기 힘들었던 것과 상반되게 말이다. 결국 이야기가 중요한 것 같다.

자연이1.jpeg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에서

홍상수 감독은 참 타고난 (그리고 부지런한) 이야기꾼이다. 그렇게 일 년에 몇 편씩 찍어내고도 아직 할 말이 남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평단과 영화제, 씨네필들이 환호한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몇 편 보지 않았고, 팬이 아닌 나는 그 부분이 참 신기했다. 물론 나도 그의 작품이 재밌기는 하다. 하지만 어떤 부분이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영화는 창작자 자신의 투영이라고들 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도 여러 인물의 이야기지만 결국 감독 본인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인간 군상과 소동을 통해서 영화감독이자 예술가 그리고 한국 남자인 자신의 생각과 치부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번 영화에서도 시인 동화를 통해서 그 부분을 말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배경을 싫어하고, 남들과 다른 시선을 가졌지만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그 모습들. 그런 동화 그리고 홍상수 감독 영화의 인물들을 보면서 수많은 영화인들이 마치 자신을 보는 것처럼 공감하는 것 같다.


예술가의 삶이 고달프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일반인(이라고 표현해도 될까)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렵다는 것까지.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본인의 직업을 예술가로 칭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예술 분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다른 예술에 비해 상업적인 부분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작품을 만드는 데에 큰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화를 예술로 치느냐를 가지고도 논쟁이 많았다.


홍상수 감독 본인도 화려하고 유복한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다. 유명한 부모님에 미국 유학도 꽤 오랜 기간 다녀온 그는 가난한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물론 현재의 그는 부를 좇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가 그렇게 영화를 공부하고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건 부모의 덕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전공했던 영화과에도 가난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 흔한 학자금대출을 받은 사람도 드물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영화라는 예술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선택하기 쉽지 않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돌아가 영화인들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열광하는 것에 대한 나의 얕은 결론은


홍상수의 영화가 그들의 거울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동화와 다른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 모순적이면서도 찌질하고, 하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자기 연민과 위안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영화를 오래 공부한 (홍상수 감독과 배경이 비슷한) 평론가, 프로그래머 등의 전문가들은 더더욱 그럴 것 같다.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건드리지만 공감하며 웃어넘기는 그 시원함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홍상수의 영화, 그리고 수많은 트로피와 환호에 완전히 어울리지 못하는 건 배움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그들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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