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_다시 만난 세계

by 에바

by 퀴어씨네클럽

너무 지쳐버린 어느 날이었다. 내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종종 찾아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 잘 이겨내왔음에도 이젠 더 이상 벗어나기엔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 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보자 싶어 가까운 심리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가장 빠른 날짜에 예약을 잡고 그 후 몇 달 간 센터를 다니며 우울의 원인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릴 적 어떤 사건으로 기인한 것이었고, 그때부터 모든 갈등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며 자라왔던 것이다. 상담이 마무리 될 때 쯤, 나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그동안 제 자신을 너무 미워했던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제 자신인데 말이예요.”

나는 그제서야 내 세계를 마주하고 돌보기 시작했다.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오며 상담센터에 전화를 했던 날이 떠올랐던 건, 주인이를 보며 그때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 대견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주인이는 자신의 존재를 절대 부정하지 않았다. 절대, 위축되지 않았다. 당당하게 말한다. 과거는 지나갔고, 내 인생 망가지지 않았다고. 내 세계의 소유권은 나한테 있다고 말하는 주인이는 그야말로 자신의 삶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내 세계의 주인은 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저 내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평안하기를 바라며 살아왔던 지난 날들. 사랑은 커녕 오히려 미워했던 날들. 그래서 미안했다. 하지만 알고보면 나는 누구보다 살고싶었고, 내 존재가치를 사랑했기에 애쓴 결과가 상담센터가 아니였을까 싶어 대견하기도 했던 것이다.

세계1.jpeg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


물론 상담 이후, 마음이 완전히 치유되진 않았다. 여전히 우울감은 때때로 찾아오곤 한다. 과거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테니까. 전보다 확실히 나아졌지만, 때마다 괴롭다. 주인이도, 엄마도, 주인이와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미도도 역시 씩씩하다가도 이내 나약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동생 해인이 절치부심 준비한 마술쇼에서 실수가 나자, 관객석의 친구들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응원하는 장면으로 스스로가 주인인 각자의 세계에서는 이 모든 것도 괜찮다고 영화는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헷갈리고, 혼란스럽고, 두려울 때 내 탓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토닥토닥. 괜찮다는 것을 말이다.


주인아,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게 있어? 라고 물을 때 ‘사랑’이라고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답하는 주인이는 사실 사랑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이다. 집 나간 아빠의 답장을 기다리고, 사람들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건네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사랑이 가득한 사람 말이다. 가만 보면, 누군가가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냐고 물어올 때 나오는 대답은 사실 내가 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나는 누구보다 내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느 날 마법같이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있는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너의 세계는 누군가의 세계를 두드릴 수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그 가능성만으로도 소중하다고.


세계2.jpeg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


마음이 소란했던 어느 날 밤,


친구에게 문득 내 장점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친구는 잠깐 고민하더니 웃음 이모티콘과 함께 내 이름 세글자로 답변했다. “***인 점.^_^” 우문현답이었다. 세상에 태어나는 건 무궁무진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그 세계에 이름을 붙인다. 가끔 슬퍼질 때면, 나는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곤 한다. 그렇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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