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미니
1.
여기 '동화'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시를 쓴다. 허나 아직 등단한 것은 아니어서 어디 가서 당당하게 시인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그는 ‘적당히 먹고 살 만큼만 번다’고 말하지만, 누가 봐도 돈이 없다는 사실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말일뿐이다. 그의 아버지는 잘 나가는 변호사여서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 아버지 도움받지 않고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 어려울 땐 손 벌릴 곳이 있기는 하다. 그야말로 아주 절박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닌 것이다. 흔히 통용되는 '사회적 조건'으로 따지면 현실에 흐린 눈을 하고 사는, 한량스러운 하남자다.
2.
동화에게는 3년 만난 여자친구 '준희'가 있다.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을까. 그는 준희의 가족을 만나기를 미루다가 우연히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다. 언니는 시종일관 동화의 변호사 아버지를 언급하며 크게 걱정할 건 없지 않냐고 말하고, 부모는 동화를 '이해'한다고는 말하면서도 아직 뭘 몰라서 저러는 거라며 신랄하게 깎아내린다. 관객은 속물적인 그들을 보며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찰 것이고 누군 포복절도하겠지만 우리도 과연 그들과 다를까? 당장 나조차도 눈 앞에 동화라는 사람이 서 있다면 그의 시를 향한 진심보다
그의 형편에 눈이 더 갈 것은 명약관화하다.
3.
동화는 비록 능력은 부족해도, 적어도 자기 삶에 있어 비겁하진 않다. 그런 동화를 보며 서른이 다 되어서도 잃지 않은 그 미련한 순수함이 일견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비겁하게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땐 왜 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삶을 끊을까도 수차례 고민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런 실존적 고민 따윈 묻어 버린 채 그저 주어진 시간에 끌려가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난 이미 오래전 현실과 타협해 버렸다.
4.
최근 누군가 내게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 뭐였을 것 같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댄서’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른 채 살아왔던지라 그 답을 하면서 스스로도 놀랐다. 돌이켜보면 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춤추는 걸 좋아했다. 엄마 말로는, 내 방문을 열 때마다 난 늘 춤을 추고 있었다고
한다. 가세가 기울며 어려운 집안의 형편을 계속 봐야만 했고, 그 와중에 예술을 하고자 했던 누나로 인해 우리 집은 늘 칼날 위에 서있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난 늘 ‘부모에게 짐만 되지 말아야지’라고 되뇌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지금 나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작은 회한이 남아 있을 뿐이다.
5.
영화는 동화와 준희의 가족을 병치시키며, 저 속물들보다는 러닝타임 내내 포커스 아웃된 카메라처럼 세상사 온갖 조건들에 차라리 흐린 눈으로 사는 게 낫지 않냐고 말하는 것 같다. 그 고고한 태도가 조금은 노골적이라고 여겨질 때쯤, 동화는 준희를 꽉 끌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마지막엔 결국 고장이 나버린 구닥다리 차에 앉아 "이제 이 차는 좀 팔아야 겠다"고 중얼거린다. 암만 세상 사람들이 뭐라 떠들어도 기꺼이 끌어 안을 수 있는 사람 한 명 쯤 내 곁에 있고, 삶에 있어 적당한 타협정도 하면서 살면 괜찮지 않냐는 감독의 달관에 나도 조금은 동화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