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퀴어>_내가 나라는 공포

by 도롱

by 퀴어씨네클럽

영화 <퀴어>는 스스로 퀴어임을 부정하는 60대 퀴어 ‘리’의 사랑 이야기다. 겉으로 보기엔 ‘리’ 가 유진과의이룰 수 없는 사랑에 집착하며 놓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그 이면에 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은 타인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통렬한 진실.


이 메시지가 나를 극장으로 두 번이나 불러들였고,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확신까지 들게 했다. 사실 두 번 본 <퀴어>는 불완전한 지점이 많다. 급전개되는 3막의 속도, 서로의 갈 길을 찾아 떠났던 두 인물이 정글에서 갑작스럽게 재회하는 장면, 유진의 ‘리’에 대한 감정선 등, 설명이 부족하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곳곳에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내게 최고의 영화가 된 이유는, 그런 구멍들을 메우고도 넘치는 감독의 진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이 나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닿아 있었다.


퀴어1.jpeg 영화 <퀴어>에서

나는 26살에 비로소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게이임을 인정했다. 그 전까지는 평범하게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평화로울 수 있을까?” 만약 이 자기부정의 삶이 60대까지 이어지고,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내가 뒤늦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는다면? 죽음을 앞두고 처음으로 사랑에 휩쓸렸을 때, 지난 인생을 모조리 부정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모든 원망의 대상이 결국 ‘나 자신’뿐이라면? 그 사실이 너무도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지난 26년의 삶을 부정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때 그 결심을 하지 못했다면, 나의 인생 후반은 ‘리’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누구인지 알면서도 끝내 부정하고, “육체와 정신이 분리됐다”는 멍청한 말로 속이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환상 속에서 ‘리’가 ‘유진’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은 결국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음을 앞둔 이의 뒤늦은 깨달음이. 그 또한 감독이 관객에게, 그리고 자기 부정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퀴어들에게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3막에서 유진 역시 리와 마찬가지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됐다”고 말하며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유진과 헤어진 지 2년 후,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리는 유진이 다른 남자와, 자신과 함께 갔던 여행지를 다시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진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 걸까?” 유진만큼은 리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 무한한 자기 부정의 고리를 끊어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감독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유진은 리의 비극을 눈앞에서 보았으니까. 유진만이라도 정신과 육체가 일치된 퀴어로 부디 살아가기를. 한때 나는 자기 부정의 퀴어 서사는 이제 케케묵었고, 그런 영화는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헤테로처럼 아무 고민 없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퀴어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요즘’의 트렌디한 퀴어 장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해준다. ‘요즘’의 트렌디한 것이 아닌, ‘언제나’ 퀴어 장르의 본질은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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