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피터
호불호를 떠나 영화 <퀴어>는 비주얼과 사운드로 완전히 내 취향을 저격했다. ‘All Apologies’가 흘러나오는 지독할 정도로 아름다운(어느 정도냐면 벌레에 펄쩍 뛰는 내가 지네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오프닝과 ‘Come As You Are’가 흘러나오며 리가 걸어가는 초반부에서 ‘끝났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진의 비주얼은 배우 드류 스타키의 평소 스타일과 너무 달라서 어느 모습에서 그런 부분을 발견해서 캐스팅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구아다니노 이 변태 같은 사람…
흔히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고장이 난다고 한다. 리는 유진과 마주친 이후 완전히 고장 나버린다. 진짜 보는 내가 낯부끄러울 정도로 유진 앞에서 광대를 자처한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결국 밥 먹던 유진한테 집적대다가 한 대 맞고 나가떨어진다. 이외에도 영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리의 추잡스러운 행동들이 이어진다. 마음속으로 ‘왜 저래’를 한두번 한 게 아니지만, 사실 멀리 떨어져 고고하게 비웃은 것이 아니라 리의 모습이 나와 닮아있어 수치스러움이 더 커서였을 것이다. 영화에 여러 번 등장한 거울 이미지처럼 영화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었다.
영화는 리의 짝사랑 이야기에서 후반부 별안간 기괴한 현대미술로 전환한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엔 물론 당황스러웠지만, 영화가 끝나고 곱씹을수록 그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소설 <퀴어>와 그 작가 윌리엄 버로스에 대해 찾아보니 더욱 영화의 표현이 이해가 갔다. 원작 소설은 리와 유진이 야헤를 찾으러 간 여행에서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데 반해, 영화는 구아다니노가 만들어낸 몽환적인 후반부가 이어진다. 마치 꿈 같은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이 나오는 후반부는 윌리엄 버로스의 인생을 보면 더 이해가 쉽다. 실제로 마약 중독에 동성에게 끌렸던 버로스는 남미에서 만났던 청년과 본인을 토대로 소설 <퀴어>를 집필했다. 실제로 아내의 머리를 총으로 쐈던 사건, 문장을 잘라내고 재배열하는 ‘컷업 기법’, 주술과 환각에 집착하며 야헤를 찾아 떠났던 경험까지— 영화의 후반부는 이 모든 버로스의 실제 삶을 응축해 표현한다. 구아다니노는 <퀴어> 소설의 영화화를 스무 살 때부터 바랐다고 하니 원작의 굉장한 찐팬이자 성덕인 것 같다.
리의 한바탕 추잡 쇼를 보며 혀를 내둘렀지만, 늙은 리가 홀로 침대에 누워 유진이 올렸던 다리를 떠올리는 마지막 순간 매우 서글퍼졌다. 개인적으로 어떤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랑이 뭐길래 이토록 사람을 처량하게 만드는 걸까? 퀴어뿐만 아니라 짝사랑을 해봤던 모든 이들은 공감할 만한 순간이었다.
나도 리가 되기 싫어요. 근데 되면 어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