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엔드>_미련과 여운

by 에바

by 퀴어씨네클럽

나는 같은 영화를 한번 더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을 오롯이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 더욱이 다음 장면이 바로 기억나서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게 됐다. 바로 네오 소라 감독의 영화 <해피 엔드>다. 참 재밌게도, 두 번 보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또 보고 싶어졌다.


왜 이 영화는 자꾸 보고싶었던걸까. 왜 이상하게 미련이 남았던 걸까?


영화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건 시스템의 ‘안과 밖’ 이었다. 시스템 안에서 질서있게 살아가는 것과, 시스템 밖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 <해피엔드>의 10대 주인공들은 학교가 만든 시스템에 저항하면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시점에 시스템을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도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두 주인공 ‘유타’와 ‘코우’의 관계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해피1.jpeg 영화 <해피엔드>에서

자연스럽게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유타였고, H는 코우에 가까웠다. 17살때 만난 H, J, D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은 다르지만 비슷했다. 학교에서 윤리 또는 정치 과목을 배우면서 나는 낭만주의자, H는 초현실주의자(지독한 현실주의자), J는 이상주의자, D는 현실주의자라며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이 되면서, D는 점점 멀어져 갔고, J는 연극과로 진학하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H랑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초현실주의자와 낭만주의자였지만 우리는 웃음 코드가 같았고 ‘부정’한 것에 대한 생각이 같았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인 H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현실적인 것과 낭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20대 중반, 나는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됐고 H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이 시기에 우리 사이는 소원해졌다. 가장 큰 원인은 H가 회사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고 있을 때, 내가 미처 생일 축하를 해주지 못한 것이었다. 귀국해서 마음이 많이 상한 H의 마음을 돌이켜보려 했지만 H 역시 서운한 마음에 내게 모진 말을 많이 했고, 그로 인해 우리 사이는 많이 멀어지게 됐다. H가 그때 내게 했던 말들은 이별 통보와 같은 것이여서, 집에 와서 언니랑 술마시며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H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단 하루도 허투루 지내는 친구가 아니였다. 그런 H와 오래 잘 지내고 싶었지만 H에 비해 나는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고, H가 이런 비루한 나에게서 곧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H가 날 인정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H의 아픔보다는 내가 나름대로 현실적으로 잘나가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H는 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니까 때마다 참았을 거고,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왔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다시 볼 수 없게 된 이유인 것 같다.


그렇게 하나 남은 고등학교 친구 J와 매해 H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지낼까, 우리 생각은 할까? 연락해볼까. J는 결국 연락했지만 나는 하지 못했다. 이전에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예감, 그리고 그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마주했을 때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내 기억 속에 H는 좋은 사람으로만 남기를 바라는, 결국 이기적인 마음에서다. 통상적인 ‘한국 사회’ 라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H와 나는 여전히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 였던 걸까. 당시에 두 가지 모두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에 아픈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지만 그러나 확실한 건 지금의 내가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H와의 인연을 유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으니까. 이 영화는 H가 생각나게 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상한 미련이 남아서 계속 보고싶은 것일지도.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들, 아쉬움, 후회, 그때 우리였기에 즐거웠던 순간들을 이제와서 붙잡아 놓고 싶은 것은 미련한 마음일지 모른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그 미련한 마음까지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H는 그렇게 살다가 가끔 틀어보고 싶은, 영화나 책으로 남아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영화 <퀴어>_보기 싫은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