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엔드>_끝, 시작

by 미니

by 퀴어씨네클럽

오랜만에 극장에서 한 영화를 두 번 관람했다. 처음 <해피엔드>를 봤을 땐 영화의 주인공이자 절친 사이인 유타와 코우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헤어질 때 두 사람이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다. 매일 같이 함께 올랐던 육교 위에서 코우에게 어김없이 장난을 치는 유타의 모습에 프레임을 멈추는 감독에게서 어떻게든 그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느껴져 마음이 된통 흔들렸다. 재밌었던 건 나는 꽤나 단호하게 두 사람은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지 않겠냐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두 번째 보고 나니 내가 왜 그렇게 단정적인 사람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해피2.jpeg 영화 <해피엔드>에서

다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소원해진 누군가가 떠올랐을까? 나는 아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학창 시절 친한 친구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내 고등학교 시절과 등치시킬 수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는 없다. 첫 관람 때는 유타나 코우 같은 이가 떠오르지 않아 슬펐던 반면, 두 번째 관람 때는 살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내 모습이 나를 슬프게 했다.


고등학교, 학원, 대학교, 동아리, 군대, 일터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의 마지막 인사는 분명 “다음에 보자”였겠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말 그대로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린 채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슬프지만 그렇다고 큰 아쉬움도 없고 미련도 없다. 유타와 코우가 졸업 말

미에 이르러 각자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서로 인지하는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질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내 모습으로부터 나는


‘관계’를 어떤 무게로 감각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늘 인간은 결국 혼자라고 되뇌이는 나지만, 그렇다고 내가 관계 회의론자라는 고백

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감정이 일렁였던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다. 같은 퀴어 친구이자 서로가 서로를 선택된 가족이라고 여겼던 친구가 돌연 결혼 발표를 했을 때가 떠오른다. “나 결혼해”라고 말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내 몸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뿐, 나는 진심으로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어 행복하게 축무를 준비했다. 비록 춤을 추기 전 한마디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자마자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난 관계의 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넘어 떠나보낼 때가 왔음을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말미에 유타는 코우의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 혼자서 잘못을 뒤집어쓰고 코우를 보내주지만, 코우와의 접점이기도 했던 음악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인생에 들인다. 누군가를

놓아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또 다른 누군가를 내 삶에 맞이할수 있다는 것. 인간은 그래서 아름다운 존재다. 그런 점에서 헤어짐에 미숙한 또래 청년들이 너무나 많은 지금의 현실이 더욱 한편으론 걱정스럽다. 함께 할 땐 열렬히 함께 하고 떠나보낼 땐 아름답게 떠나보내기. <해피엔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 명제를 감각적으로 그린 영화다.

작가의 이전글영화 <해피엔드>_미련과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