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엔드>_행복하게 끝내는 방법

by 도롱

by 퀴어씨네클럽

근래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두 번 본 적이 있었나 떠올려 보니 없다. 나는 원래 인생 통틀어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엔 오랜만에 같은 영화를 두 번이나 극장에서 봤다 그 영화는 바로 해피엔드다.


영화는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 무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디제잉이라는 취미를 공유한 두 사람은 음악을 듣기 위해 몰래 새벽에 학교에 잠입한다. 장난 삼아 벌인 행동이 뜻밖의 큰 사건으로 번지고 결국 학교는 뒤집힌다. 이 사건을 빌미로 학교는 감시 장치를 설치하고 학생들을 감시하며 인권을 무시하는 정책을 도입한다. 그리고 이 일은 유타와 친구들 사이의 관계도 서서히 흔들리게 만든다.


영화는 겉보기엔 학생들 사이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혀 관련 없는 사건을 핑계 삼아, 학생들을 억압하려는 학교의 모습과 그런 억압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분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의 정치 현실을 날카롭게 비춘다. 학교라는 공간은 인종 자본 등으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오늘날의 사회를 상징하는 무대가 된다. 감독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유타와 코우 두 사람의 관계에 더 집중해서 영화를 봤다 . 그들은 왜 갈라지게 되었을까? 영화가 끝난 뒤


이들의 우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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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가는 때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유타와 코우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걸 안다. 아마 서로를 찾지 않고 각자 또 다른 인연을 만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결말을 안타까워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둘은 관계에 최선을 다했고 만나는 동안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끝이 될 수 있다. 살아오면서 나는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미리 알아서 오기 전에 스스로 멀어진인연들이 많았다. 내가 놓친 수많은 인연.들 그에 대한 후회가 많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다.


해피5.jpeg 영화 <해피엔드>에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인연들을 만나는 요즘 나는 안다. 이 관계들의 끝이 언젠가는 올 것이 라는 걸 하지만 이전처럼 먼저 멀어지거나 관계를 단정 짓지 않기로 했다. 행복한 끝을 맺기 위해 만나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요즘 따라 승준이가 생각난다. 군대에서 2개월 후임으로 만난 친구였다 영화감독이 꿈이었고 음악 노래취향까지 전부 잘 맞았다. 항상 붙어 다녔고 선후임들 사이에선 남자 친구 아니냐는 농담도 나올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전역 후 서울에 사는 승준이와 대구가 고향인 나는 예전처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1년에 한두 번은 여행도 함께하고 종종 안부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8년 전 내가 서울로 올라온 뒤로 모든 연락이 끊겼다. 승준이 한때 시험 준비한다고 연락을 줄였던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8년째 소식이 없다.


SNS도 하지 않고, 주소도 몰라 찾을 방법이 전혀 없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기억나는 게 없다. 혹시 세상을 떠난 건 아닐까 싶어 경찰에 문의했지만 친가족이 아니면 생사여부조차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가 장 소중했던 시절인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행복한 끝을 맺기도 전에.


승준이를 떠올리면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만 ’ 남는다. 영화 현장에서 힘들다고 하소연했을때 "더 잘해"라는 말보다는 따뜻한 위로나 위로의 손길을 먼저 내밀 걸. 가족 이야기를 힘들게 꺼내놓았을 때,


조금 더 깊이 공감하고 안아줄 걸 그런 생각들만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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