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_낯선 폭력

by 도롱

by 퀴어씨네클럽

낯설다. 영화를 보고 난 첫 감상이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물리적 폭력성이 여성 주인공들에게 덧입혀져,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사랑싸움에는 박치기와 주먹질이 기본이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건 물론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의 턱을 박살 내거나 총으로 쏴 죽이기도 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내가 다쳐도, 전부를 잃어도 상관없다는 어느 느와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노빠꾸 직진 서사가 여성의 육체성과 결합된 채 펼쳐지는 이 장면들은 나에게 꽤나 낯설게 다가왔다. 이 낯선 감정을 처음 느꼈던 그때가 떠올랐다.


러브1.jpeg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


전역 직후, 영화의 꿈 하나만 안고 처음 발을 디딘 영화 촬영 현장에서였다. 촬영 첫날, 촬영팀 막내로 어리바리 서 있던 내 귀에 거친 쌍욕이 꽂혔다. 주인공은 포커스 풀러 A, 쌍욕의 대상은 바로 나였다. 그게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A는 촬영팀에서 유일한 여성 스태프였고, 경력으로는 촬영감독 다음으로 높은 연차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지만, 실수라도 하면 A는 가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다른 팀원들에게는 주먹질로 위협을 하기도 했다. 포커스를 잡는 데 방해가 되기만 하면, 현장의 누구든 그녀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군대에서도 겪어 보지 못한 부조리를 사회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 그리고 그 폭력의 주체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이질감. 신경질적으로 현장을 휘두르던 그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육체 노동이 많고 계급 구도가 뚜렷한 영화 촬영 현장의 특성상, 여성이 버티기엔 가혹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 마초적인 남초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마초성을 장착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어쩔 수 없어. 군대는 남자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


군 시절, 소령 진급을 앞두고 있던 여군 정훈 장교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남성 중심 사회임을 체념처럼 받아들이던 그녀도,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초성을 체화한 것이 아닐까. 그것만이 살아남기 위해 가능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남초 사회에서 일하는 모든 여성이 마초성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 속 잭키와 루도 역시, 단순히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에 의해 폭력성을 후천적으로 학습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쩌면 그들은 처음부터, 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폭력적 기질을 내면화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천적이든 타고난 기질이든, 분명한 건 그들 역시 이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초성을 장착했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문득 되묻게 된다. 왜 나는 남성 캐릭터의 폭력성에는 오락적인 쾌감을 느끼면서, 여성 캐릭터의 폭력에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그 이유를 추적하려 들었을까. 캐릭터의 성별이 폭력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세상도 폭력의 의미와 맥락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성별이 더 이상 잣대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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