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고니아>_우스운 이야기가 아니야

by 에바

by 퀴어씨네클럽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지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 낯선 질문은 아닐 것이다. 뒤이어 대답한다. ‘응, 나는 있다고 생각해. 너는?’ ‘그거 알아? 나사에서는 이미 외계인이랑 교신하고 있대.’ 외계생명체의 존재유무로 시작한 대화는 지구를 떠도는 온갖 소문들과 음모론으로 이어진다. ‘헐, 진짜? 그럴듯하다. 그럼 우리 내일 당장 죽는거야?’ 하며 일순간 소문이 진실이 되는 경우를 염려하다 에이, 그럴리가 하며 가벼운 농담으로 대화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영화 <부고니아>의 주인공 테디에게는 그저 웃고넘어갈 대화 주제가 아니다. 누구보다 진지하다. 지구에 잠입한 외계인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고, 나 또한 피해를 입었으니까. 그것이 진실이니까. 그러므로 비밀리에 악의 무리를 제거해야만 한다.


부고니아1.jpeg 영화 <부고니아>에서


pc를 처음 접했을 때, 인터넷 세상을 탐험하는 건 호기심 많은 나에게 아주 적절한 여가활동이 되어주었다. 포털에 단어를 입력하고 엔터만 치면 나오는 방대한 양의 정보들. 그 안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연예계 가십부터, 역사 속에 묻혀진 진실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들. 클릭,클릭하다보면 놀라운 사실들이 가득했다. 공식 기사가 아님에도, 찌라시, 음모론은 읽다보면 그럴듯해 점점 믿게 되기도 했다. 때로는 남들이 모르는 진실을 내가 알고있는 것 같기도 해서 짜릿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음모론을 반박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내가 몰입했던 감춰진 진실은 거짓이라는 사실에 허무했다. 거짓이든 아니든, 인터넷 세상에서는 새로운 정보들이 끊임없이 양상되었고,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자질도 키워나가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미지적으로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오물로 범벅되어있는 명화 모나리자 앞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치고 있는 운동가들이 담긴 기사였다. 그 기사를 봤을 땐 이미 관련 단체에서 명화테러를 몇 번 일으킨 상황이었다. 가면 갈수록 더워지고, 추워지는 날씨를 보며 지구야 미안해 라는 말로 나이브한 걱정만 하다가 지금 그림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얼른 기후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순간 여기에 진실이 있으며, 실체적인 공포가 느껴졌던 나는 혹시 또 속았던걸까?


부고니아2.jpeg 영화 <부고니아>에서

지구를 지켜야하는 전사 테디의 계획과 실행은 어딘가 유난스럽고, 엉성하다. 거대 바이오기업의 사장인 미셸을 외계인이라고 특정한 이유도, 납치하는 과정도 어색하기만 하다. 테디는 이때까지 모아온 정보를 가지고 미셸이 외계인이 맞다고 추궁하지만, 위기에 몰린 미셸은 아니라고 답한다. 법을 내세우며 협박하고, 일목요연하게 반박하는 미셸을 보며 확신이 흔들리기도 한다. 의심하는 테디와 자신을 변호하는 미셸. 둘의 대화에서 일어나는 관계성을 보며 권력의 위계를 보기도 한다. 현실이라면 결국 미셸은 구조되고 테디는 감옥에 갔을 테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권력 앞에서 지워지고야 마는 진실들. 둘을 보며 유난스러운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처럼 묻혀진 기후위기 운동가들이 떠올랐던 건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미셸은 안드로메다의 황제였다. 테디의 우스꽝스러운 납치 계획은 결국 필요한 진실이었다. 결국 인간에게 희망이 없다고 결론내린 황제는 지구에서 인간들의 작동을 멈춘다. 지구에 널브러진 인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래, 아름다운 지구를 위해서는 차라리 이게 맞다라고 생각한다. 권력에 따른 양극화는 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그로 인해 정작 마주해야하는 진실은 자꾸만 무시되는 인간들이 만든 세상.


그 사이에 인간들의 터전인 지구는 망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원작 <지구를 지켜라!>를 쓴 장준환 감독은 당시 세상의 온갖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고 싶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평론가의 극찬을 받았지만 관객에게 외면을 받은 이 영화가 약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세상 밖에 나온 건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처음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는 한 사람의 이야기야. 라는 말이 지구인들에겐 인터넷에 퍼지는 이야기들처럼 낭설처럼 우습게 들렸던걸까. 하지만 장준환 감독도, 병구도, 테디도, 란티모스 감독도 아직까지도 이렇게 계속 외치고 있는데 우스울지라도 한 번 쯤은 진지하게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부고니아>에서 내가 본 건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외쳐보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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