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사>_성장보다는,

by 미니

by 퀴어씨네클럽

아이들을 볼 때면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적어도 어린 시절만큼은 상처받지 말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 받을 상처만으로도 충분하기때문에 너무 빨리 잔인한 현실을 깨달을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많은 성장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렇듯 아이들은 너무나도 빨리 현실과 마주하곤 한다. 그 첫 시련은

대개 가정 안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아빠, 엄마, 자녀 둘 정도로 구성된 화목한 가정의 풍경으로 상상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선 가정의 붕괴는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큰 상처일 수밖에 없다.


이사4.jpeg 영화 <이사>에서


<이사>의 렌코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렌은 어떻게해서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붙잡으려 애쓴다. 하지만 점점 자신이 어떻게 해볼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다 결국 체념에 이르는 렌의 모습이 한없이 가여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렌의 성장보다는 렌에게 그 가혹한 현실을 부여한, 돌봄에 서투르고 제 역할을 할 줄 모르는 부모에게 먼저 시선이 갔다. 무턱대고 집을 나가버릴 때는 언제고 뒤늦게 다시 잘해보겠다고 나서는 아빠나, 이혼이 렌에게 가해질 영향은 모른 채 자신의 해방이라고만 인식하는 엄마를 보며


우리 사회 속 수많은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렌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호수에서의 여행을 부모 몰래 마련한다. “나는 엄마 아빠가 싸워도 참았는데 왜 둘은 못 참냐”는 렌의 물음에 대한 답을 아빠는 여행지에서 뒤늦게 내놓는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었다.” 그 무책임한 답에 나는 어째선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부

여되는 남편/아내이자 부모로서의 무거운 책임은 누구에게나 버거울 수 있다. 그 무게에 짓눌려 도망친다고 해서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상황 속에 있다면 나는 렌 하나만 바라보고 결혼생활을 버텨낼 수 있을지 선뜻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도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혼이 불가한 현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렌의 부모처럼 제 역할과 책임을 못 해낼까봐, 그런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게 두려워서 내 삶에서 결혼과 육아라는 선택지를 일찌감치 지워버린 채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의 마지막, 렌의 행복했던 가족과의 추억은 끝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모와 함께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렌은 깨닫는다.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을 이젠 반갑게 보내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어렸을 적 가족과 떠났던 여행이 떠올랐다. 더운 여름, 가평의 한 오래된 펜션, 바닥에 피워져있던 초록색 모기향, 기타를 연주하던 아빠와 그 옆에서 깔깔대던 누나와 나.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렌이 호수 앞에서 마주한 기억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나도 뒤늦게 알게 됐다. 그와 같은 순간이 우리 가족에게 더 이상 없을 거라는 걸.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깨달은 그 진실을 렌은 그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잔인한가. 그래서 <이사>는 단순히 성장영화라고 하기엔 내겐 너무 가혹한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들이 그런 가혹한 성장 대신 그 시절만큼은 알아야 할 만큼만 알고, 그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위해선 우리 어른들이 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크다는 걸 다시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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