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사>_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있었다

by 에바

by 퀴어씨네클럽

일본 교토, 이혼 가정 아이들이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마주친다. 주인공인 ‘렌’은 부모의 소식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화목한 가정의 아이고, 다른 친구는 이미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렌에게 그리 유쾌한 만남은 아니다. 둘은 퉁명스레 대화를 나누다, 렌은 ‘사투리’로 상대에게 시비를 건다. 렌은 교토 토박이지만 동급생은 다른 지역에서 이사를 왔기에 사투리가 어색하다. ‘말투 언제 고칠거야?’ 라는 렌의 질문에 ‘글쎄,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바뀌어져 있겠지.’ 라고 답변하고, ‘나도 모르게 바뀌어져 있을거라는 말. 이상하지 않아?’ 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이사3.jpeg 영화 <이사>에서

아이들이 바라보는 어른의 세계는 이상하다. 의견을 묻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계약서를 가지고 와서 ‘같이 잘 살기 위해’ 도통 이해가지 않는 규칙들을 들이밀며, 걱정하라고 한 적 없는데 걱정하게 만든다고 타박하는 것이 어른이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면, ‘그건 다음에’, 마치 숙제를 받은 듯 대답을 회피하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될 거라는 답변은 아이들에게 늘 의문이지만, 선생님(어른) 말씀 잘 듣는 아이가 제일 좋은 아이이므로 아이들은 결국 ‘좋은’ 아이가 되길 택한다. 그러나 12살 인생 가장 큰 자부심이였던 ‘화목한 가정’이 무너지는 순간, 렌은 어른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아이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나는 이사가 익숙한 사람이다. ‘이사’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열한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산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엄마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수도권 이사라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그 여파로 아빠는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선택’ 이라는 사유로 아빠를 어렵게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둘은 정말 많이 싸웠다. ‘아이들’에 해당되는 나와 언니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떨어져야 하는 상황도 서글퍼 죽겠는데, 집안 분위기까지 지옥 같으니 이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야말로 우리는 불행했다. 수도권으로 올라온 이후에도 우리는 몇차례 더 이사를 했고, 때마다 지난한 과정을 겪었으며 나는 사춘기를 직통으로 맞아 점점 소심한 성격이 되어갔다.


사실상 영화에서는 렌이 아닌 렌의 아빠가 이사를 하지만, 이사는 이처럼 크든 작든 구성원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같은 일이다. 하지만 렌도, 그때의 나도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받지 못했다. 왜? 라고 물어보면 회피하고, 집요하게 파고들면 결국 가족의 갈등으로 이어져 말 잘 듣는 아이를 택하는 것이 결국 최선의 선택이라고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어른의 세계를 도통 이해할 수 없고, 상처만 받으니 스스로 나를 치유하며 자라야만 했었다. 렌 또한 이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말 좀 들어달라고, 그래서 ‘반항’으로 보여지는, 나쁜 짓들을 한다.


영화 후반부, 렌은 억지로 만든 가족 여행을 실패하고 홀로 여행지를 떠돌기 시작한다. 렌의 방황이 숲 속에서 새벽 내내 길게, 고통스럽게, 슬프게 지속된다. 방황의 끝에서 렌은 화목했던 자신의 가족이 화염 속에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렌은 그때서야 고통의 실체를 마주하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에 ‘축하한다’고 외친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이제 그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생각해보면 우린 이런 과정을 한번씩 겪어왔던 것 같다. 생에 최초의 고통을 목도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자가 치유해서 그렇게 어느 날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버린다. 아마 우리는 잊고 있었을테지만, 렌이 결국 ‘축하한다’고 말하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 당시에 우리는 너무나 슬펐고, 괴로웠을 것이다. 렌이 객석에 앉아있는 우리를 응시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른이 되기위해, 스스로를 감싸안기 위해 애써왔다.


영화를 보다보면 사각형 식탁이 아닌 삼각형 식탁이 눈길을 끈다. 아이의 자리는 정 중앙에 위치하고, 맞은편 꼭지점은 아래로 쭉 뻗어있다. 마치 아이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식탁은 대화의 장소다. 아이가 앉은 식탁은, 무궁무진한 미래를 내포한다. 소중한 존재를 지킨다는 건, ‘으레 그런 것’이 아니라 동등한 자리에서, 상대를 존중하며 내면의 소리를 들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스스로 구원하며, 치유하며 나도 모르게 어느새 어른이 되었을지언정, 무궁무진한 미래가 펼쳐질 아이들에게는 내가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지는 잊지 않는 자세를 가지고 대해야겠다. 그래야 우리는 어른들이 만드는 아픈 시간들을 점차 줄여나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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