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고니아>_악취미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을 생각하면 ‘악취미’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어딘가 뒤틀린 듯한 그의 영화 중에서 취향에 맞는 <더 랍스터>, <더 페이버릿> 같은 작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놉시스나 설명만 듣고 혀를 내두르며 관람하지 않았다. 특히 배우 엠마 스톤과 함께한 최근작들, <가여운 것들>과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는 성적이고 폭력적인 묘사가 과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앞으로 이 감독의 작품은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부고니아>도 엠마 스톤과 함께 한 작품이고, 에마 스톤이 고문당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들었기에 사실은 관람할 생각이 없었다.


부고니아5.jpeg 영화 <부고니아>에서


걱정들은 기우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지만, 잔인한 장면은 잠시 눈을 감으면 견딜 만했고, 선정성에 대한 우려는 주인공 형제의 화학적 거세로 차단된다. 내 예상과는 달리 나의 취향에 꽤 맞는 작품이었다. 원작 <지구를 지켜라>를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특히 미셸의 정체가 밝혀지고 지구가, 아니


인류가 멸망하는 엔딩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가끔 스스로 ‘인간 혐오자’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와 다른 생명체에 끼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고, 인간만 없으면 지구에 평화가 오리라 생각한다. 인류에게는 동족의 배신자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인류가 멸망하는 재난영화를 좋아한다. <투모로우>부터 최근 <돈 룩 업>까지 영화적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인류와 인류가 이루어 낸 것들이 쓸려나가는 것들을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 란티모스 감독이 ‘악취미’가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나쁜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고니아>의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었다. 나는 재난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극 중에 그려지는 인류애와 실낱같은 희망을 좋아하는 편인데, <부고니아>는 인간에 대한 조소만 가득하며 외계인 황제는 결국 인류를 포기한다. 엔딩에서 인류가 멸망한 모습을 가지각색으로 오랫동안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정말 찐(?)이다.’ 생각하며 웃음 지었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거나 피를 토하며 죽는 모습이 아닌, 갑자기 행동이 멈춰버린 인간들을 보면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괴함을 느꼈다. 결국 엔딩 크레딧 끝에서는 인간의 음악도 멈추고 자연의 소리만 남게 된다.


부고니아6.jpeg 영화 <부고니아>에서

그렇다면 나의 이 ‘악취미’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인간에게 큰 상처를 받거나 끔찍한 일을 겪은 것도 아니면서 왜 인류의 멸종을 바라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이 지구에게는 선이 아닐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선과 악의 구분은 어려워졌다. 아니 애초에 인간이 선과 악을 감히 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부고니아>의 초반에는 미셸을 악으로 여겼다. 자본주의 기업가인 그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테디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어야 한다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물론 영화는 미셸이 외계인이라는 음모론이 끼어들지만, 반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내 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후반부 미셸이 신적인 존재인 외계인 황제라는 것이 밝혀지고 인류에 대한 희망을 접는 것을 보면서, 쾌감이 느껴지고 동시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비관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인간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찾는 나지만, 나날이 인류에 대한 회의감은 커져간다.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세상에 다시 전쟁이 찾아왔고, 자본 뒤에 수많은 생명이 사라져가고 있다. <부고니아>에서 테디는 외계인 탓으로 넘겨버리지만, 모두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서로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넘어서 꿀벌 같은 다른 생명들을 위협하는 인류 문명이 과연 선일까? 그렇다고 죄 없는 사람들까지 벌을 받아야 할까? 과연 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완전무결한 사람이 있을까?


<부고니아>는 내 안의 질문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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