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고니아>_냉소 이후

by 미니

by 퀴어씨네클럽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하던 2020년 2월 무렵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대로 세상이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이번 생은 망했으니 그냥 모두가 죽는 게 낫다는 꽤나 반사회적인 생각에서 말이다. 여기에 더해 당장의 전염병에 인류가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병든 지구에겐 오히려 낫지 않을까란 생각에 난 코로나 시기에 비밀스러운 행복감마저 느꼈다.


부고니아7.jpeg 영화 <부고니아>에서


그러나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인간은 전염병을 끝내 정복하고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도 나는 자발적으로 내 삶을 끝낼 순 없으니 불가역적인 재난이 덮쳐서라도 이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쩌면 오래된 우울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행성의 지구 충돌이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마음의 안식을 얻었던 <멜랑콜리아>의 저스틴처럼 인류 멸망을 떠올리면 난 마음이 편안해진다.


영화 <부고니아>의 결말은 정확히 그 지점과 맞닿아 있다.


<부고니아>는 지구에 암약 중인 안드로메다인들이 지구를 멸망시키고 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형제와 거대 바이오 기업 여성 CEO 간의 납치 소동극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납치한 이가 외계인이 맞았다는 사실이 결말에서 드러나지만, 침략 때문이 아닌 푸르른 지구를 지키고자 했던 존재였음이 밝혀지고 외계인들은 인류에게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며 파멸을 선언한다.


부고니아8.jpeg 영화 <부고니아>에서

바뀔 가능성이 전무한, 가망 없는 인간에겐 멸종이 답이자 평화 아니겠냐는 일종의 냉소와 함께 빈자와 부자, 노동자와 자본가, 민중과 정치인 가릴 것 없이 한날한시에 평등한 죽음을 맞이한 인류 절멸의 이미지가 “그들은 언제쯤 깨달을까”(When will they ever learn)라는 노래와 함께 아름답게 전시된다. 아예 지구 자체를 터뜨려버렸던 원작과는 달리 환경과 동물에게는 죄가 없다며 기후 위기의 책임을 인간에게 분명히 묻고 있는 생태주의적 엔딩이기도 하다.


세상의 멸망을 상상하는 지독한 염세주의자인 나이지만, 란티모스의 이 냉소적 해피 엔딩에 마냥 동참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엔데믹 이후에 내가 변화한 것일까. 단순 사회적 갈등을 넘어 극단적 반목이 뉴 노멀이 되어버린 시대 속 무기력감과 좌절은 점점 커져가지만, 내가 상상하는 세계를 결국 보지 못하고 그냥 저렇게 죽어버리면 어딘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퀴어로서 적어도 이 대한민국 땅에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


동성결혼이 법제화되는 모습은 보고 죽었으면 좋겠어서 말이다.


사회주의자 무슬림의 뉴욕 시장 당선,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구호 선단에 오른 젊은 활동가와 같은 일련의 뉴스를 보면서 아무리 가망이 없어 보여도 부던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세상을 포기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 멸망은 여전히 나에게 낭만이지만, 인간의 절멸을 논하기엔 아직 우리에겐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난 이 영화의 냉소에 냉소를 날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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