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키드>_덕후가 세상을 만든다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나는 꼴에 영화를 전공했다고 영화는 냉정하게 평가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덕질하는 영화를 평가할 때 꽤 곤란해진다. 이야기와 인물들에 푹 빠져든 나머지 작은 구멍 정도는 눈감고 넘어가게 되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들이 좋지 않은 평을 받고 그 부분에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갈 때는 마음이 아프다.

위키드.jpeg 영화 <위키드>에서


이번 <위키드: 포 굿>이 1편인 <위키드>에 비해 좋지 않은 평들을 받고, 한국에서 <위키드>의 절반도 되지 않는 관객수로 마무리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다. 물론 대중들의 좋지 않은 평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원작 뮤지컬을 보면서 느꼈던 극의 단점이 1, 2편으로 나누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 뮤지컬의 2막을 영화 2편으로 각색하면서 내린 존 추 감독의 선택들이 최선이었다고 믿는다. 가장 크게 지적받는 부분인 너무 빠른 전개와 개연성의 경우, 뮤지컬 2막에서도 똑같이 비판받는다. 다양한 변명거리가 있겠지만, 나도 뮤지컬을 보면서 1막에 비해 2막이 아쉽다고 생각했기에 어느 정도 맞는 의견들이라고 생각한다. 존 추 감독은 그 부분들을 수정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적절히 더하여 <위키드: 포 굿>을 완성했다. 감독 본인이 뮤지컬의 열렬한 팬이기에 이야기를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런 그의 애정이 나에게도 닿았고, 또한 위키드의 엄청난 팬인 배우들의 열정도 느낄 수 있었다. 작품에 아쉬운 부분은 있을지라도 그들의 진심이 나에게 닿아 덕심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잡덕’이다. 얕게 넓은 분야를 덕질하는 나는 전 세계 디즈니랜드를 가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이고, 좋아하는 영화의 재개봉에는 빠짐없이 달려간다. 평소 빈곤한 체력을 뽐내는 내가, 덕질할 때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새벽같이 오픈런을 하다니 나조차도 놀라곤 한다. 없는 힘도 끌어올리는,


나를 덕질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나아가 덕후들을 끌어모으는 콘텐츠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정교하게 짜인 세계관이 아닐까 싶다. 답답하고 재미없는 현실과 반대되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세계가 펼쳐질 때 덕후들은 그곳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를 휩쓰는 거대 프랜차이즈 콘텐츠들도 그렇다. 미키 마우스로 시작된 디즈니는 수많은 캐릭터와 콘텐츠로 그들만의 나라인 디즈니랜드를 세웠고, 장대한 판타지 세상을 만들어 낸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시리즈도 계속해서 사랑을 받고 또 신작들을 만들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방탄소년단 그리고 케이팝 아이돌들도 그들만의 세계관과 스토리로 인기를 끌었다.


위키드2.jpeg 영화 <위키드>에서

소설부터 뮤지컬, 그리고 영화로 이어진 <위키드> 시리즈 또한 탄탄하고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위키드>는 조금 과장해서 미국 문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오즈의 마법사>를 토대로 2차 창작을 한 작품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다소 단순했던 선과 악의 구분에 의문을 제기하고 서구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첨가하여 만든 어두운 분위기의 팬픽션이다. 그리고 이 소설 속 마녀들의 우정에 집중하여 대중적으로 각색해서 만든 것이 뮤지컬이고, 이를 영화화 한 것이 이번 <위키드>와 <위키드: 포 굿>이다. 원작 <오즈의 마법사>는 에메랄드 시티, 황금색 벽돌길, 도로시와 친구들을 머나먼 한국에서도 알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작품이고, 그런 탄탄한 세계관 위에 매력적으로 만들어진 세상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덕후들은 <위키드>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덕후들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리고 나아가 그 세상 속 나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나 또한 어렸을 적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며 마법 학교에서 편지가 오면 어쩌지 꿈꾸곤 했다. <위키드>도 <오즈의 마법사> 세상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어떤 것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창작이 시작되었다니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냉정하게 평가한다는 나지만, 이번 <위키드> 영화 시리즈에는 냉정할 수가 없었다. <오즈의 마법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뒷이야기를 만들어 낸 소설가 그레고리 맥과이어, 그 소설을 멋지게 무대로 옮긴 위니 홀츠만과 스티븐 슈위츠, 그리고 그 뮤지컬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애정을 듬뿍 담아 만들어 낸 존 추 감독까지, 창작자들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같은 덕후로서 모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영화 어플에 별 반개를 슬쩍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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