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_국보가 될 수 없더라도

by 에바

by 퀴어씨네클럽

어렸을 때 내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소설가가 되고 싶기도 했으며 자기 전에 는 대학가요제라는 무대에 오르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아무튼, 돌이켜보니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예술가가 되기엔 딱히 특출나진 않았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어느정도 진도가 빠른 학생으로 여겨졌지만 학원을 대표하는 언니오빠들에 비해 실력 차이가 심했고, 교내 글짓기, 포스터그리기 대회에서 장려상, 우수상은 받았지만 최우수상은 받지 못했다. 오, 조금 소질이 있을지도? 싶으면 이미 일찍 시작해서 앞서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면 기운이 팍 꺾여 예술가가 될 가능성은 일찌감치 접어 두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분야에 특출난 재능을 발휘하는 인물들을 보면 일단 치기어린 질투심이 일어난다. 특히나 나이대가 비슷하다면 더욱 샘이 난다.


어떻게 보면 나도 ‘예술가’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너무 일찍 조연이 되는 것을 자처한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다.
국보3.jpeg 영화 <국보>에서

영화 <국보>에는 특출난 재능을 가진 두 인물이 등장한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부키 무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키쿠오, 그리고 가부키 명문가의 자제로 애초부터 전도유망한 배우가 될 운명이었던 슌스케. 어느날,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게된 키쿠오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슌스케 아버지 한지로에 의해 가부키 배우로 성장하게 되고, 슌스케와 키쿠오 두 사람은 ‘가부키’라는 예술 속에서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한지로는 자신을 대체할 가부키 배우로 슌스케가 아닌 키쿠오를 선택하고, 무대에 오른 키쿠오를 본 슌스케는 아버지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체감하며 집을 떠난다.


재능이 있음에도 나보다 더 재능이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스승을 대신해 무대에 오르기 전 가부키 분장을 하던 키쿠오는 외로움과 압박감으로 괴로워하며 친구 슌스케에게 말한다. ‘너의 피를 퍼마시고 싶어.’ 슌스케는 아버지가 선택한 미래의 국보를 위해 덤덤히 그를 다독이지만, ‘나 또한 재능있는 너의 피를 마시고 싶어.’ 라고 속으로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관람석에서 현실의 벽을 통감하며 도망친 그 순간부터, 나는 키쿠오보다는 슌스케의 앞날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영화는 진정한 국보로 거듭나는 키쿠오의 파란만장한 시간들을 나열해나가지만, 나에게는 키쿠오의 이야기가 아닌 슌스케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가부키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한지로’라는 이름은 물려받지 못한 채, 죽을때까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마음의 구멍을 안고 살아갈 사람, 하지만 유전병으로 다리가 괴사되어 사랑하는 무대에 더 이상 설 수 없는 ‘슌스케’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영화에서 슌스케가 자신이 사랑하는 ‘가부키’를 포기하지 않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끝까지 완성해낸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사실상 영화 <국보>의 주인공은 키쿠오라고 볼 수 있겠지만, 슌스케의 생에서 주인공은 슌스케. 바로 자신이었다. 키쿠오의 빛나는 무대를 보고 좌절하며 도망치면서도 ‘난 도망치지 않는거야’ 라고 말했던 그때처럼.


국보4.jpeg 영화 <국보>에서

나는 슌스케처럼 특출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예술’이라는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음에도 벽이 느껴질 때는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 아쉬움으로 좋아하는 분야를 업으로 삼아보겠다고 지금까지 그 변두리에 머물고 있다. 와중에 다행인 건, 뒤늦게라도 잠시 놓아두었던 예술가의 길을 다시 시작해보려 하는 지인들을 보며 나도 마음을 다잡게 된다는 것이다. 글쎄, 먼훗날 어릴 적 꿈꿨던 예술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슌스케처럼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금 당장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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