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_텅 빈 아름다움

by 미니

by 퀴어씨네클럽

난 어렸을 때부터 TV 속에 나오는 가수를 따라 춤추기를 좋아했다. 그 가수는 언제나 여성들이었다. SES, 핑클, 베이비복스, 샤크라 등 여러 걸그룹의 무대를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놓고 수시로 돌려보며 안무와 동선을 외워 무대를 재현하곤 했다.


그렇다. 난 될성부른 게이였다.


중학생 무렵부터는 미국 문화에 녹아들면서 팝 디바에게 빠지기 시작했다. 마돈나, 자넷 잭슨, 비욘세, 제니퍼 로페즈, 그웬 스테파니, 시애라, 퍼기, 레이디 가가, 그리고 나의 최애 리아나에 이르기까지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고등학생 때 잠시 케이팝으로 회귀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난 늘 섹슈얼하고 여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팝 디바들에게 매혹당했다. 여기에 더해 난 단순히 그들의 음악을 즐기는 것을 넘어 내가 그 디바가 되길 원했다.

방구석 댄서이자 스트리퍼였던 나는 뒤늦게 춤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왁킹과 만났다. 여성스러운 선과 화려한 팔동작, 퀸스러운 애티튜드가 특징인 왁킹은 70년대 LA의 게이클럽에서 시작된 춤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사를 전혀 몰랐음에도 왁킹은 그냥 운명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퇴근 후 열심히 춤을 배웠고, 공연과 배틀에도 참가하고, 왁킹으로 직접 안무를 짜서 결혼식 축무를 올리기도 하는 등 나름 리얼 디바의 삶을 살기도 했다.

국보5.jpeg 영화 <국보>에서


주변의 남성들과는 명백히 다른 나의 이런 성향 때문에 청소년기에는 소외감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소위 말하는 ‘걸그룹 춤추는 끼순이’로 명명되는 수많은 게이들로부터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자연스러운 내 모습으로 긍정하는데에 이르렀다. 다만 난 늘 궁금했다. 왜 나는 여자 가수에게 이입하고 여성스러운 움직임을 갈구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그리고 이것이 왜 많은 게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난 영화 <국보>의 오프닝 자막에서부터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일본의 전통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를 뜻하는 ‘온나가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온나가타를 수행하는 키쿠오라는 인물을 통해 내 안에 자리한 여성성과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오랜 욕망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쉽게도 철저히 무너진다. 영화에는 신분이라는 한계와 그로 인해 부여된 온갖 역경을 딛고 국보의 자리까지 오르며 아름다움의 화신이 된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는 있지만 정작 그가 연기한 온나가타는 보이지 않는다.

국보6.jpeg 영화 <국보>에서


감독은 영화의 자국 내 기록적인 흥행의 이유로 ‘아름다움의 힘’을 언급했다.


그 말은 일견 맞으면서도 어딘가 공허하게 들리는데 <국보>가 보여주는 그 아름다움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정해진 방향으로만 향하는 가부키 그 자체와도 같다.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이라는 인물이 지닌 퀴어성을 기대했던 나에게 이 영화는 균열을 허락하지 않는 경직된 텍스트로서만 존재할 뿐 그 이상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완벽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갈망이라는 명제에서 조금도 빗겨나가길 원치 않는 이 영화에는 그저 감응 없는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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