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보>_모순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유난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날, 연말이라 몰아치는 업무를 마치고 터덜터덜 극장으로 향했다. 쌓였던 피곤함이 몰아쳐 영화 시작 전 꾸벅꾸벅 졸았다. 영화가 시작되어서야 잠에서 깨어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평소 싫어하는 일본 특유의 미화적 정서가 묻어있진 않을지 삐딱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일본 남자 예술가의 넘치는 자기 연민을 보고 있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일본 전통 가부키라는 주제도 우리나라 전통에도 관심이 없는 나에게 관심 밖의 분야였다. 게다가 여성을 남성이 연기한다는 문화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번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고, 결말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국보7.jpeg 영화 <국보>에서


<국보>라는 제목을 보고 일본 문화에 대한 찬가거나 일본인들의 애국심을 일으키는 영화가 아닐까 오해했던 것 같다. 영화는 그보다 예술가라는 존재에 대해 집중한 것 같았다. 다만 보면서 나는 수많은 모순을 느꼈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영화에 대한 모순적인 감상이 남았다.


우선 작품을 만든 사람이 재일 한국인 3세 이상일 감독이라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정확한 개인사는 알 수 없지만, 감독이 이름을 일본식이 아닌 이상일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스스로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 감독이 일본 문화의 정수인 가부키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것이 꽤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물론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국적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재일교포들이 겪었던 차별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왔던 나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국보>가 가부키 문화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해를 풀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경계인의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에 단순하지 않은 영화가 된 것 같다.

국보8.jpeg 영화 <국보>에서

일본은 비교적 남성 동성애에 대해 한국보다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배경을 보면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다. 사무라이들은 어린 소년을 진정한 사랑의 대상으로 보고 남색을 행했고, 가부키에서도 여성 역할을 남성 배우가 연기한다. 이렇게 일본은 예전부터 남성 간의 사랑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다만 이는 여성의 인권이 낮았기 때문도 있다. <국보>에서도 같은 예술가여도 슌스케의 어머니는 끝내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이외에도 영화에 등장한 수많은 여성 캐릭터는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로만 존재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현재의 인식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나는 커다란 모순을 느꼈다.


그리고 예술가의 삶 또한 모순이다. 걸작이 나오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고난이 필수처럼 여겨진다. 키쿠오 역시 혈통의 한계와 가까운 이들의 죽음, 커리어의 추락, 완성되지 못한 가족까지 불행한 삶을 살아온 끝에 인간 국보가 된다. 사람들의 환호와 극찬 뒤에는 불행이 뒤따른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나 또한 모순적이다. <국보>의 몇몇 부분들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결국 키쿠오의 딸처럼 좋은 부분들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최근 스스로 일뽕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일본 여행을 자주 갔다. 일본 문화 특유의 정갈함과 아기자기함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러나 문득문득 한국인의 자아가 튀어나오곤 한다. 일본 콘텐츠에서 자기 연민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 제국주의적 뉘앙스가 느껴지면 바로 거부감이 든다. 그런 부분에서 일본 여행이나 문화를 소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와중에 나는 또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어쩌면 위선자라고 지적받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국보>는 나라는 존재, 나아가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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