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기나는 숲>_무력

by 도롱

by 퀴어씨네클럽

희수는 군 복무 중 경계 근무를 서던 어느 날, 저 멀리 숲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연기는 오직 희수의 눈에만 보인다. 희수의 눈에만 보이는 그 연기는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이 연기가 바로 경제 파탄으로 풍비박산된 희수의 집안을 상징하며, 군인 신분으로는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의 무력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문제는 너무나 뻔히, 코앞에 보이는데도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청춘의 무력감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은 하나같이 나의 인생 영화 리스트 상위에 올라 있다. 나는 왜 이런 류의 영화, 아니, 코너에 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걸까. 이 단편을 보며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미성년자 신분으로 경제활동은커녕 아무런 자유도 없었던 학창 시절의 나, 그리고 2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처박혀 지냈던 군 시절의 내가 겪었던 것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연기나는.png 영화 <연기나는 숲>에서


1교시가 시작되기 전, 담임이 교실에 들어온다. 그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세 명의 학생 이름을 부른다. 그중 하나가 나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담임은 등록금을 왜 안 냈냐며, 너희들 때문에 행정실에서 쿠사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또 쿠사리를 놓는다. 고지서를 부모님께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 담임. 하지만 사실은, 낼 돈이 없어서 못 낸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반복됐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등록금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고지서를 제때 전달하지 않는, 담임을 곤란하게 만드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나의 군 생활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됐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나는 아주 단순하게 ‘내가 집에 없으면 입이 하나 줄어드니 집안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군대에 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집안은 더 힘들어졌고, 엄마는 식당일을 해야 했으며, 누나는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의 무력감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고등학교 3년과 군 생활 2년은 그런 무력감으로 나를 조금씩 무너뜨렸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냐고.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이 더 좋다고. 지금의 나는 내가 선택한 일에 책임질 수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예전엔 무기력에 짓눌려 버티기만 했지만, 지금은 마주 보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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