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양강소녀>_당부

by 미니

by 퀴어씨네클럽

중학생 주아는 자신이 나고 자란 춘천이 싫다. 방학임에도 엄마가 운영하는 닭갈비 식당 일을 도와야 하는 것도 싫고, 춘천을 찾는 불륜 커플들, 매일 보는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도 꼴보기 싫다. 주아는 특히 춘천의 명소인 소양강 처녀상마저도 곱게 보지 않는다. 이것들은 모두 주아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춘천을 향한 혐오로 귀결된다.


나도 내가 자란 곳, 김포가 그렇게도 싫었다.


김포로 이사하기 전에는 곧잘 살았던, 행복했던 가정의 모습이 떠오르지만 김포로 이사한 이후 우리 집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가세가 기울며 고생하던 부모님, 많고 많은 집 중 외진 곳에 살았어서 힘들게 등하교를 하던 초등학생의 나, 면학 분위기라는 말조차 아까웠던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서울에 있는 대학만 진학하면 이 지긋지긋한 김포와도 끝이라 믿으며 지옥 같던 고등학생 시절을 버텼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


소양강소녀1.png 영화<소양강소녀>에서

이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길바닥에 쏟아버린 수많은 시간들이었다.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지하철 없는 도시에 산다는 죄로 부여받은 왕복 3시간의 통학길과 알바를 한 뒤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알바에 열중하느라 공부는 뒷전, 그렇다고 열심히 논 것도 아니라 대학 시절은 한스럽게 남아있다. 이후 직장인이 되었고 그 사이에 김포엔 지하철도 생겼지만 고통스러운 통근은 여전하다.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서울에 발을 들였지만 여전히 다른 발은 김포에 묶여있다. 주거지까지 서울로 옮겨야 완벽한 미션 성공이겠지만, 계속 이렇게 김포에 살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쓰라린 현실을 이제는 수긍한지 오래다. 그렇게 어느새 영화 속 주아가 싫어하는 “시간이 멈춘 채 사는 어른”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서울 진입을 바랐던 나처럼 주아도 언젠가는 춘천을 벗어날 것이다. 늦은 밤 홀로 식당에 앉아 아픈 어깨를 주무르며 술잔을 기울이는 엄마를 본 후 “아무 것도 못해보고, 돌로 변해” 안타깝기만한 존재였던 소양강 처녀 동상에게 달려가 그녀를 묶은 밧줄을 풀고 태풍 바람에 멀리 날아갈 수 있게끔 했듯이 말이다. 그렇게 남들처럼 비슷하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일하며 서울에서의 삶을 영위할 것이다. 그런 주아도 훗날 춘천을 떠올렸을 때 나처럼 나쁜 기억만이 남아있을까.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비치던 도로를 친구와 함께 깔깔거리며 자전거를 타며 달리던 순간들,


자유롭게 수영장을 유영하던 그 찬란했던 순간들을 과연 기억할까.


난 주아에게 본인이 그토록 싫어하던, 현실에 발 묶인 채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어렸을 적 그 순간들만큼만은 꼭 기억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지금 김포를 떠올리면 좋은 기억들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이 도시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더 이상 싫어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 뿌리와도 같은 공간에 대해 혐오라는 감정만이 남아있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결국 나를 만들었고, 나를 있게 한것은 이 도시였다는 사실을 난 너무도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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