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바
영화사에는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들이 몇몇 있다. 특히나 영화를 굳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두루 알고있는 장면이라면, 그것은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명장면일 것이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졸업>의 마지막 장면은 여기에 속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식을 뛰쳐나와 도망가는 차 안에서 허무한 표정을 짓던 더스틴 호프만. 나는 마지막 장면을 알고서도 영화를 봤지만 보고 나니 그 장면이 더 좋아졌다. 짜르르하게 묘한 기분을 줬던 그 표정은 아직까지 내게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재밌게도, <소양강 소녀>의 주인공, ‘주아’가 마지막 장면에서 짓는 표정에서 <졸업>의 더스틴 호프만이 떠올랐다. 왜였을까.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이건 아니야! 라고 나름의 반항(?)을 하고, 내 가치관을 좇아 저질러 버리면 뭔가 허무한 것. 더스틴 호프만은 <졸업>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표정을 짓는다. 앞으로도 이러한 날들이 펼쳐질 거라는 것을 직감하듯, 대단한 건줄 알았는 데 별거 아닌 그런 것. <졸업> 의 명장면은 그 오묘한 감정이 더스틴 호프만의 얼굴에 잘 담겨있다.
주인공 ‘주아’는 서울에서 온 관광객 커플과의 작은 소동을 거친 후, 절친과 거리를 거닐며 ‘난 어른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살고싶지 않다’고 말한다. 춘천의 명물인 ‘소양강 처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주아는 이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주아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를 보며 ‘난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거야’라고 되뇌었던 내 모습. 엄마처럼 능력만 보고 평생갈 파트너를 고르지 않을 거고, 엄마처럼 세상과 나를 고립시키며 살지 않을 것이고, 엄마처럼 변화를 싫어하고 아는 것만 하면서 살지 않을거야. 어렸을 때 내게 ‘어른’은 엄마였다.
엄마의 모습이 어른이라면, 난 정말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가 너무 답답했지만, 도리어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까딱하다간 엄마처럼 살게될지도 모른다고. 아니, 어떻게보면 엄마가 나보다 더 잘 살아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어렸을 때 ‘어른’을 바라보던 시선과 지금 ‘어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확연히 달라졌다. 나 스스로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등 지켜야 할 존재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나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더 짙어진다. 어찌보면 주인공 ‘주아’가 말하는 ‘어른’처럼 이대로 가다보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살아, 어차피 인생이 그런거야 라는 뻔한 얘기를 하고싶은 건 아니다. ‘주아’라는 소양강 소녀가 시간이 멈춘 듯 사는 어른들을 보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소양강 처녀에게 감긴 밧줄을 풀어준 건, ‘주아’가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바를 표현한 것일 테다. ‘주아’의 절친은 그런 주아에게 넌 가끔 너무 감성적일 때가 있어, 어른들이 그렇게 사는게 무슨 문제야? 라고 말하지만 주아는 앞으로도 <졸업>의 더스틴 호프만처럼 ‘그렇게’는 살아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주아’도, 주아의 절친도, 어른들도 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일 뿐이라는 걸 영화는 말해주는 듯 하다.
일을 ‘저질러’ 버리면 대단한 일이 생길 것 같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허무하든, 보람차든 그것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사는 게 아득하다. 하지만 왜일까? 그걸 알면서도 나도 그저그런 어른으로 살고싶지 않아 아등바등 대고 있는지라 더스틴 호프만이 기대를 저버리고 결혼으로부터 도망친 것, ‘주아’가 소양강 처녀의 밧줄을 풀어준 것.
그 행동들을 응원하고 싶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