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행과 나날>_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최근 여행을 많이 다녀왔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과도하다고 느껴졌지만, 돈과 일 같은 현실적인 고민은 내팽개치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갔다. 나는 살아오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고민해본 적이 많지 않다. 남의 감정에는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정작 내 감정은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최근 혼자 떠난 여행들은 나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볼 좋은 기회였다. 오랜 시간 몰랐던 나를 알고 싶어서, 지겨운 현실에서 떠나고 싶어서


나는 계속 여행을 떠났다.


영화 <여행과 나날>에서 ‘여행은 말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라는 대사가 깊이 와닿았다. 수많은 말과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곳, 남에게 관심을 끄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 나에겐 여행이었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나날과 다른 생경한 경험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주인공 이가 각본을 쓴 영화에서 소녀와 소년은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수영하며 시종 무표정하고 지루해 보였던 얼굴에 웃음을 찾는다. 이도 여행을 떠나 우연히 들어간 여관의 주인과 비단잉어를 훔치고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 속에서 생기를 찾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

여행과 나날1.jpeg 영화 <여행과 나날>에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들 한다. 완전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고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이 쌓이고 일상이 단순해지면서 삶에 새로운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도 과거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뭐든지 재미있고 영감이 계속 떠올랐겠지만, 일본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고 무미건조해지면서 자신이 쓴 영화의 폭풍우 속 바다를 헤엄치는 인물들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인간은 안정적인 환경을 추구하면서도 삶을 재밌게 해줄 낯선 경험을 원한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취약한 나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하는 것처럼. 예전에는 내가 회피형 인간이라 재미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여행을 좇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진 않겠지만, 여행은 잃어버렸던 삶의 활기를 되찾고 나에 관해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과 나날2.jpeg 영화 <여행과 나날>에서

생각해보니 영화와 여행은 공통점이 많다. 첫째는 내가 좋아한다는 것이고(농담), 둘째는 영화와 여행 둘 다 일상을 잊고 새로운 경험을 만끽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피처가 되어준다는 점이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일상과의 균형은 필요하다. 낯설고 재미있는 경험에만 빠지면 평범한 날들이 지옥같이 느껴질 것이다. 내가 작년에 필요 이상으로 여행을 갔던 것은 우울한 내 삶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물론 여행과 영화가 삶의 원동력은 되어주겠지만, 특별한 것 없는 일상적인 나날에서도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삶 속에서 좀 더 나를 알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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