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도롱
나는 영화를 보면 늘 메이킹 필름부터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영화의 꿈은 어릴 때부터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저 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오래도록 동경해 왔다. 이 영화가 누구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그들은 누구인지,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감독을 중심으로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컷, 한 컷을 완성해가는 그 생생한 순간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10년 전, 나는 전역하자마자 상경해 영화 현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 현장의 현실은 방구석에서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노동 중에서도 중노동. 등따시고 배부른 현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박봉, 밤샘 촬영, 무더위와 한파는 기본이었고, 현장 용어조차 모르던 나는 군대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갈굼과 눈칫밥까지 덤으로 먹었다. “제발 촬영아 끝나라.” 속으로 수도 없이 외쳤다. 그리고 촬영이 끝났을 때는 전역했을 때보다 더 큰 해방감을 느꼈다. 두 번 다시는 안 한다고 다짐까지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영화 현장에 지원하는 나를 발견한다. 도대체 촬영 현장은 무슨 매력이 있길래,
나는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그곳에 왜 다시 기어들어 갔던 걸까.
지금 일하는 곳은 DMC역 근처, 여러 방송국과 영화사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마다 종종 촬영 현장을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는데. 저기서 슬레이트를 치고, 촬영 준비를 하고, 스태프 형, 누나들과 수다를 떨던 시절. 현장을 뛰어다니던 그때 공기의 감촉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 아련한 기억이다. 영화 현장은 이 추운 날에도, 이 무더위에도 사람을 갈아 넣는 곳이다. 이 고난을 뻔히 알면서도, 이상하게 늘 그곳을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 설렘이 먼저 든다. 그리고 결국엔 다시, 나도 저기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 〈누벨바그〉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주는 영화다. 영화는 단순히 프랑스 영화계의 황금기를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지금의 씨네필들에게 찬사를 받는 ‘새로운 물결’의 탄생 순간을 외피이고, 진짜 이야기는 미지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 동시에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지를 찬찬히 보여준다. 이 영화는 〈네 멋대로 해라〉의 메이킹 필름을 드라마로 옮긴 것 같은 작품이다. 주먹구구식 현장에서 첫 장편을 찍는 장 뤽 고다르는, 제작자와 다투고, 헨드헬드와 후시 녹음 같은 제멋대로의 방식으로 스태프와 배우들의 불신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그의 확신과 열정은 결국 사람들을 설득한다.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현장은 돌아가기 시작하고, 마침내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나 역시 그 현장의 설렘과 낭만 때문에 “다음 영화는 없다”는 다짐을 번번이 철회하면서, 다시 또, 또 영화를 찍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촬영 전 시나리오가 공유되고, 각자가 그리는 그림을 하나로 맞춰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각자의 의견이 감독을 중심으로 모인다.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모두는 카메라 뒤, 모니터 뒤에서 숨죽여 지켜본다. 한 씬, 한 씬 완성될 때마다 작은 희열들이 쌓인다. 그리고 결국 완성된 영화를 모두 함께 바라볼 때의 그 감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제작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해 완성한 작업물이라는 사실이, 다음 영화,
또 다음 영화를 향해 다시 걸어가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영하의 날씨에 따듯한 사무실에 앉아 아주 편하게 업무를 보는 지금, 나는 창밖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을 그곳의 현장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