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미니
영화 <누벨바그>는 장 뤽 고다르가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인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전반적인 제작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다. ‘누벨바그’라는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영화에 ‘새로움(nouvelle)’은 없다. 다만 이 영화에는 영화를 향한 대책 없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실존 인물 모두 영화 사랑꾼들이며 이들 머릿속엔 영화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 또한 영화에 참여한 배우와 스탭들의 단체사진으로 엔딩 크레딧을 마무리함으로써 영화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완성시킨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이 영화가 낭만 가득한 시간으로 기억될까.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라는 매체와 꽤나 가깝게 살고 있기까지 한 나에게 이 영화는 마냥 그렇진 않았다. 대책 없는 영화 사랑이 더 이상 나에겐 현재형이 아닌 걸까 의문이 든 나는, 영화사의 수많은 작품을 레퍼런스처럼 언급하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내 인생에 방점을 찍었던 영화들을 통해 나의 영화사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나는 언제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졌던 걸까.
그 시작은 초등학생 때였다. 멀티플렉스가 극장 생태계를 점령하기 이전, 동네에는 단관극장이 있었지만 내게는 ‘시네마 천국’이 아닌 오줌 지린내 가득한 공간으로만 기억된다. 그러다 집에 설치된 IPTV를 통해 우연히 봤던 정재은 감독의 영화 <태풍태양>을 만난 후 가슴이 뛰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와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내 영화사의 두 번째 작품은 ‘제2의 고다르’라고 불렸던 프랑스를 대표하는 또 한명의 감독 레오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이다. 사랑이 뭔지도 몰랐던 청소년 시기, 노트북의 작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본 그 영화는 내 가슴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재밌는 건 이 무렵에 영화과 진학을 꿈꿨을 법도 한데 내겐 창작력이 없다는 메타인지가 어느정도 되어있던 탓에 난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했다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영화를 사랑하는 마지막 단계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이후 대학을 다니며 영화를 향한 사랑은 본격적으로 꽃폈다. 세 번째 영화는 앞선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내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는데, 생애 처음 가본 영화제라는 공간에서 본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현실의 춤>이다. 일반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를 만난 것에 더해, 극장이 영화를 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닌 수많은 담론이 이어지는 공간임과 동시에 관객들의 영화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음을 느끼게 해준 그 감각은 나에게 일종의 ‘누벨바그’였다. 이후 나는 닥치는대로 영화제를 다니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가 (시네필이라면 누구나 거친다는) 영화적 허세와 스노비즘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를 향한 애정은 점차 커져만 갔고 영화와 가까이 살고 싶다는 열망에 이르면서 난 영화와 관련된 업계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누벨바그>에서 제작자 보르가르가 고다르에게 “촬영 첫날 꿈은 깨진다”고 말하듯, 멋진 영화인의 삶이란 허상에 불과했다. 고다르가 꿈으로서의 영화를 찬미하면서도 “영화제작의 공포”를 주지시키듯 꿈으로 가득한 스크린 그 너머의 세계는 더러운 진창일 뿐이었다.
영화의 허상을 마주한지 오래된 지금, 때마침 영화 산업은 변곡점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화의 옆에 머물고 있는 나를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계속 이렇게 대책 없이 영화 옆에 머물러도 될까? 고다르도 대책 없이 영화를 사랑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에겐 그것을 뛰어넘는 일종의 절실함이 있었다. 내겐 그 절실함이 아쉽게도 없다. 그렇지만 난 내 영화사에 점을 찍어줄 또 다른 영화를 기다리며 그렇게 계속 영화의 언저리를 거닐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