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바
왜 이렇게까지 영화를 사랑하게 된걸까.
영화사에서 굵직한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는 장 뤽 고다르. 그의 첫 장편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일화가 담긴 <누벨 바그>를 보며 내내 이 질문을 했다. 그리고 두 영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1920년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역동적인 시기를 담은 <바빌론>과 소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한 1950년대의 <파벨만스>. 그리고 이 두 영화는 다시 영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이른바 ‘새로운 물결’이 요동치던 1960년대를 다룬 영화 <누벨 바그>로 이어진다. 각각 다른 시절 속에서, 우리는 영화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왜 이토록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영화’를 사랑하게 된걸까. 엉성하고, 비난받고, 남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피해까지 주면서 말이다.
내가 영화에 빠지게 된 계기는 분명하다. 때는 20대 초반, 독일 여행 중에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옆자리 승객과의 대화로 인한 것이었다.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여정 속에서, 독일인이었던 그 승객과 어쩌다보니 4시간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베를린은 왜 오고 싶었는지, 다음 여행지는 어딘지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까지 이어졌다. 대화 말미쯤, 그는 소개해주고 싶은 영화가 있다며 영화 제목이 쓰인 쪽지를 건네주었다. 쪽지에는 <프란시스 하>라고 적혀있었다. 귀국 후에, 마침 몇개월 뒤 국내 개봉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을 때, 기차 안에서 부족한 언어로 더듬더듬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나에게 해주고 있던 말이 영화 한 편으로 오롯이 전달될 수 있구나. 그때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영화와 함께할 것이란 걸 말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국내 여러 영화제의 스태프로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의 특성상 지역의 여러 곳을 돌며 단기성으로 일을 해나가야만 했다. 거기다 몇달 간 품을 많이 들여 규모가 큰 행사를 적게는 5일, 길게는 10일동안 치뤄야하는 건 정신적,신체적으로 부침이 많았다. 그런데도 왜 이 일을 지속하는 걸까? 단지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 일을 계속한다는 건 나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영화가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돈벌이 수단이 되어가면서 영화가, 영화제가 싫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이 일에 계속 마음이 가는걸까. 이유를 찾고 싶었다.
어느 날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영화제 기간에 극장을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일하다가, 급히 호출을 받아 내 담당이 아닌 GV의 게스트 의전을 하게 됐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뒷문으로 게스트를 끌고 처음으로 입장하는 순간, 어떤 먹먹한 기운이 상영관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금방 끝난 영화는 <왕십리 김종분>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이 영화와 객석을 꽉 메운 관객들이 1시간 40분동안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있었는지. 연결. 처음 영화에 빠졌던 그때처럼, 나는 영화와 연결되는 순간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이 곳에 계속 머물었던 건 일하면서 종종 마주했던 이 순간을 너무 사랑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대한 사랑이, 어떤 감정이 앞서 말한 것처럼 명확히 정리된 건 아니다. <누벨 바그>와 같은 영화를 보면서 소위 ‘호시절’을 그리워하며 역시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단정짓기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은 다소 암울한 소식만이 들려올 뿐이기 때문이다. 고다르가 마음껏 영화를 가지고 놀아볼 수 있었던 건 대중의 시선이 영화의 ‘다음’을 향하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에 반해 2030년대를 향하고 있는 지금은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점점 외면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지금과는 다른 그때의 시대가, 환경이, 동료가 부럽다. 현실만을 바라본다면,
내가 계속 영화 안에 머물러도 될지, 불안하고 의문이 든다. 가면 갈수록 더더욱.
이쯤에서 나는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를 떠올린다.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1920년대의 프랑스 파리로 향하게 되는 소설가 지망생 ‘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꿈에만 그리던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면서 ‘길’은 20년대가 예술의 호시절이라고 생각하지만, 20년대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가 호시절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둘은 과거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나도 아드리아나와 길처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채 과거의 어느 한 시절을 부러워하고만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영화가 거기에 있다.’ 언젠가 유명한 영화 평론가가 한 말을 내가 기억해둔 것일 테다 . 영화가 좋은 이유를 분명히 말하기 어려웠을 때, 우연히 들었던 이 문장을 꼭꼭 씹어서 마음 한 켠에 심어두었다. 이 말의 뜻은 영화는 이미지의 나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파생되는 어떤 감각으로써 영화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누벨 바그>에서 목격한 고다르의 독특한 촬영현장,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현장 스태프들이 함께 느끼는 어떤 성취감, 그리고 내가 일을 하면서 다시금 깨달은 연결의 감각. 모두가 해석하는 영화의 정의는 각기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존재할 것이다. 나는 영화가 그곳에 있으므로, 앞으로도 사랑하고, 좋아하고, 계속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