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라트>_지옥의 경계

by 에바

by 퀴어씨네클럽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여러 대의 우퍼가 설치되기 시작한다. 노련한 테크니션들에 의해 완벽하게 만들어진 무대는 곧 웅장한 테크노 음악과 함께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 사람들은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한껏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무대를 즐긴다. 그러나 몇일 뒤, 그들의 파티는 별안간 공권력에 의해 처참히 끝난다. 말그대로,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그저 춤추러 왔을 뿐인데, 통제당한다. 나는 영화 <시라트>의 오프닝과 함께, 과거의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다.


시라트6.jpeg 영화<시라트>에서


90년대 말,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막 입학할 때 쯤, 부모님과 함께 시청했던 TV뉴스에서 앵커의 암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IMF’라는 낯선 단어가 포함돼있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IMF의 희생양이 되진 않았지만 그 후 꽤 오랫동안, 티비를 시청하며 어린 나이에도 나라의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사이버틱한 분위기의 테크노 음악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CF, 드라마, 영화 등에서 테크노 음악에 맞춰 배우들이 클럽에서 열렬히 춤추는 이미지. ‘세기말’이라며 불안한 기운 속에 들려오던 테크노 음악은 비극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내 눈에는 음악에 한껏 심취한 그들의 모습이 뭔가 슬퍼보이기도 했다.


영화 <시라트>의 오프닝을 보며 과거의 이미지가 떠오른 건 과연 우연일까.


비극 속에서도 새로운 해는 비참히 떠오른다. 그리고 빛이 비추는 반대편, 가장 어두운 곳에서 최소한의 빛으로,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시라트>에서 가족을 찾으러 떠난 부자가 공권력을 피해 낯선 사람들을 따라나선 이후부터, 나는 세계 곳곳에서 자유, 인권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는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IMF시기에 내가 봤던 뉴스처럼, 이곳저곳에서 세상은 절망이 가득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내 자신도 연이어 떠올랐다.


IMF는 온 국민이 힘을 낸 덕분에 결국 위기에서 벗어났다.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를 구태여 꺼내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 탓인지, 꽤 시간이 지나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나 지인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으며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는지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는 IMF, 테크노, 세기말 이라는 키워드 정도로 기억될 이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게 기억될 시절이라는 것 또한 말이다. 다른 나라도 아닌 같은 한국에서, 내가 아무렇지 않게 보냈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생의 고비를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른이 된 나에게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시라트5.jpeg 영화<시라트>에서


충격적인 서사에 걸맞는 테크노 음악. 이 완벽하게 짜여진 예술 작품을 극장이라는 최첨단 시스템으로 향유할 수 있다는 즐거움 이면에는 괴로운 현실이 명백하게 지속되고 있다.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영화를 보고 나서는 길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묵묵히 떠난 활동가부터 국제 난민, 기아, 혐오, 기후 문제 등등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면밀히 바라보고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택해 떠나온 곳이 지뢰밭이였고, 어렵사리 지뢰밭에서 탈출해 또 머나먼 길을 떠난다. 그 길 끝에 기다리고 있는건 과연 더 나은 삶일까. 지옥은 마치 블랙홀처럼 우리 곁에서 살아숨쉰다. 다만, 영화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것은 주인공들이 처한 환경은 지옥에 가깝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장면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결국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세상은 지옥으로 가는 문을, 그 가능성을 서서히 삭제해나가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영화는 명확하게 질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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