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라트>_구원은 없다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하루가 다르게 암울해져 가는 세계, 금방이라도 전쟁이 시작될 것 같은 국내외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그렇지 않아도 팍팍했던 나의 하루가 더 끔찍해지는 기분이라 의도적으로 뉴스를 피하게 되었다. 이런 우울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우리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한다. 최근에는 쇼츠라는 손쉬운 방법까지 등장하여 갑갑한 현실을 간편하게 뒤로 미룰 수 있게 되었다.


아주 먼 과거부터 예술은 인간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머나먼 과거의 조상들도 힘든 하루하루를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불렀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다면 예술은 인간의 저주받은 삶에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영화 <시라트>는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듯한 암울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러한 현실에도 <시라트> 속 사람들은 바깥의 끔찍한 소리들과 단절하기 위해 거대한 스피커를 세우고 레이브 파티를 연다. 큰 볼륨의 음악과 마약의 환각에 몸을 맡기다 보면 전쟁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 군인들이 파티에 등장하고 스피커는 꺼진다.

시라트3.jpeg 영화 <시라트>애서


<시라트>의 초반은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아버지 루이스가 아들 에스테반과 함께 레이브 파티 현장을 찾으러 가는 로드 무비처럼 보인다. 그 과정에서 레이브 파티를 즐기는 이들과 동행하게 되는데, 온몸에 문신을 하고 마약을 일삼으며 팔과 다리를 잃은 그들을 아버지 루이스는 경계한다. 그러나 고난을 함께 헤쳐가며 루이스와 에스테반은 그들과 가까워진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의도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불의의 사고로 루이스는 아들마저 잃게 된다. 상상도 하기 어려운, 끔찍한 상실에 빠져있는 루이스를 위로하기 위해 동료들은 스피커를 세우고 그들만의 레이브 파티를 연다. 비탄에 잠긴 채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서 커다란 음악에 몸을 던지는 그들을 보면서 아픔이 조금이나마 치유되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잔혹하게도 전쟁은 그 짧은 구원의 순간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말 그대로 폭발시켜 버린다. 나는 그들의 슬픔을 음악이라는 예술로 위로하며 영화가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아무리 외면해도 전쟁이라는 끔찍한 존재는 어떻게든 우리 삶에 비집고 들어온다.


시라트4.jpeg 영화 <시라트>에서


편안한 리클라이너 좌석의 최첨단 극장에서 이 영화의 잔혹한 전개를 지켜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비극이 나에게 그저 영화 속 이야기로 소비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외면하려 해도 <시라트>가 그리는 세계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영화 마지막, 지뢰밭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구원받은 것일까? 운좋게 살아남았음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인 ‘시라트’처럼 칼날 위를 걷는 인생을 살아갈 것 같다.

나는 영화가 남긴 여운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신나는 음악을 듣고 재미있는 영화를 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낸 재앙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영화 <시라트>_잔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