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티멘탈 밸류_예술적 양심

by 도롱

by 퀴어씨네클럽

오랜 세월 집을 떠나있던 영화감독 구스타프는 연극 배우인 첫째 딸, 노라에게 자신의 마지막 시나리오를 건네며 함께 작업 할 것을 제안한다. 아버지와의 묵은 갈등이 있는 노라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 역할은 결국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레이첼에게로 향하는데. 작업이 진행될수록 레이첼은 배역과 완전히 하나 되지 못하는 감각에 사로잡히고, 끝내 스스로 하차를 선택한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다시 노라에게 돌아온다. 주저하던 노라는 그 글을 읽으며 이 작품이 단순한 영화가 아닌, 아버지가 가족에게 건네는 화해의 방식이라는 것을 느끼며 출연을 결심한다. 대개 관객들은 이 작품을 가족의 갈등과 화해의 서사로 읽는다. 나 역시 그 서사를 따라가 보려 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멈칫멈칫한 순간들이 있었다. 구스타프의 가족처럼 깊은 상처를 품은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기에. 그래서 이 영화를 온전히 ‘가족’의 이야기로만 붙잡고 쓰기에는


내 감정이 충분히 닿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센티1.jpeg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그러다 문득 한 단어가 떠올랐다. 예술적 양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다.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면서도 연극을 놓지 못하는 노라, 죽기 전 자신의 마지막 영화를 준비하는 영화 감독 구스타프, 그리고 존경하는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에 한껏 들떠있는 배우 레이첼.


이들은 단순히 예술가라는 공통점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레이첼은 주어진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지닌 배우다. 그럼에도 그녀는 구스타프와 리딩 중 주어진 역할에 이해할 수 없는 한 부분 앞에서 멈추고 만다. 연기 ‘할’ 수 있지만, 온전히 자신이 될 수는 없다는 감각. 그것에 흔들리는 그녀는 스스로 하차를 선택한다.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끝내 넘어가지 못해 내린 결정. 그 장면에서 그녀의 양심을 보았다. 구스타프 역시 큰 결단을 내린다. 오랜 시간 함께 맞춰온 촬영감독을 섭외하려 찾아가지만, 그의 노쇠함을 본 뒤 다른 핑계를 대며 돌아서고 만다. 친분과 추억만으로 작품을 맡길 수는 없다는 판단. 작품을 위해 인간적인 정마저 잘라내야 하는 수밖에 없다는 또 다른 양심을 보게 되었다. 결국 이 시나리오는 다시 딸, 노라에게 돌아오는데. 주저하다 시나리오를 읽은 그녀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영화로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미는 화해라는 걸 알아채지만 그 전에, 배우로서 먼저 몸이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내가 해야 한다는 감각. 이건 나만 할 수 있다는 감각 말이다.


센티2.jpeg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나는 영화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자주 흔들린다. 이 이야기가 통할지, 사람들이 좋아할지 계산한다. 어느 순간에는 그 계산이 창작의 중심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나 자신에게 묻게 됐다. 나는 레이첼처럼 멈출 수 있을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구스타프처럼 오랜 인연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노라처럼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아직은 그만한 확신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붙들고 싶다. 내가 시작한 이야기가 정말 나로부터 나왔는지 끝까지 묻는 태도.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을 점검하는 일. 아마 그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예술적 양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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