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미니
안녕하세요, 노라 씨. 당신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센티멘탈 밸류>를 잘 보았습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아버지를 향해 밝게 웃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어떤 관객은 같이 미소를 지었을테고, 또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근데 저는 좀 화가 났습니다. 두 사람의 화해가 이해가 안 가서 그렇다기보다는, 지금 제 상황 때문에 그랬습니다. 당신이 아빠를 마주하기조차 싫어서 뒷마당으로 황급히 도망가고,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결코 아빠와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저도 제 가족 중에 대화가 어렵고 얼굴을 보는 게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 엄마입니다.
저는 엄마와 심하게 싸운 이후로 대화를 안 한지 꽤나 오래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제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지만 문득 무언가가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엄마라는 존재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 또한 하루하루 잘 사는 것 같다가도 어딘가 위태로운 구석이 없지 않았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모든 스태프들을 공포에 몰아넣게 했던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많고 많은 남자 중에 유부남을 만나는 선택을 함으로써 관계 맺기에 서툰 모습 등이요. 그 정점에는 바로 아빠라는 존재가 당신의 일상에 침잠해있는 불안의 근원처럼 자리하고 있는 거겠죠.
무엇보다 당신과 아빠는 너무나 닮은 존재입니다. 당신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감정을 쏟던 게 실은 현실이 아닌 무대 위에서의 연기였음을 보여주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아빠가 영화라는 예술로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당신 또한 연기라는 예술을 통해서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술을 빌미로 유화의 제스처를 취하던 아빠가 처음엔 저도 가증스러웠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죽기 전에라도 속죄하려는 그의 모습에 마냥 욕할 수만도 없었습니다.
당신도 아빠의 그런 ‘진정성’에 감화되었던 것이겠죠?
그럼 이쯤에서 궁금하실 거에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왜 화가 났는지. 그건 아무래도 엄마와의 화해가 지금 상황에서 꽤나 난망해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얘기를 좀 하자면, 전 당신의 동생인 아그네스와 비슷한 아들이었습니다. 늘 아팠고, 누나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엄마를 나라도 속 썩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어렸을 적 저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다 누나가 세상을 뜨면서 이제 자식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다는 무게감, 근데 그 자식은 게이라는 사실 앞에서 제 마음 한구석엔 늘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하나의 사소한 싸움이었지만, 그간 나의 노력과 더불어 엄마에게 해명 받고 사과 받고 싶은 순간들, 그리고 당신처럼 위험한 생각을 했던 순간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화가 났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아그네스 때문입니다. 당신은 무책임한 아빠 때문에 누군가를 키운다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동생 아그네스 곁에 있어주던 존재였고, 그녀를 정성을 다해 키워주었죠. 그렇기 때문에 비록 당신은 정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지라도 지금 당신의 곁에는 언니가 잘 키운, 사려 깊은 동생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지금 저에겐 아그네스와 같은 존재도 없습니다. 제 누나 말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었고, 제 성적지향을 유일하게 얘기했던 누나조차 이젠 제 곁에 없으니 그럼 나는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에 전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엔딩에서 당신과 아빠의 모습이 조금은 손쉬운 결말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저는 당신 인생이 이젠 좀 손쉽게 흘러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가족이 응어리로 존재하는 삶은 너무나 힘들다는 걸 아니까요. 당신과 아빠와의 화해가 완전하진 않을지라도 적어도 무거운 첫 발을 다시금 뗐다는 점에서 긴 시간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엄마와 다시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보며 이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