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_ 우리는 왕을 원한다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한국에서 왕정이 막을 내린 지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일상에서 왕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어느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을 ○○왕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하고, 최고라는 의미의 접두사로도 사용한다. 아직도 세계에는 왕이 남아있는 나라가 적지 않다. 왕이 홀로 군림하는 것에 반대하여 왕을 처형하고 공화정과 민주주의가 발달했을 텐데, 사람들은 아직도 왕을 최고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왕사1.jpeg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하는 것이 시들어 가던 한국 영화계에 한줄기 단비가 되어준 것 같아 반갑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에 왜 열광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어쩌면 우리는 왕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무능력한 왕이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폭군이 아닌,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처럼 백성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호랑이와 맞서는 기개를 가진 그런 왕 말이다. 한 명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경계하는 나지만,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고 종종 이런 민주주의보다 차라리 능력 있는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다수결을 따르는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것을 여러 번 봤기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크게 국가와 정치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학교나 회사에서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다 보면 오히려 결과가 나빠지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를 꽤 많이 봤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라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를 바란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에도 무리를 이끌어 줄 리더, 족장 같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종교가 되고 왕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치인과 연예인,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인간의 삶에서 길잡이가 되어줄 사람을 찾는 것일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은 현대의 한국인들이 <왕과 사는 남자>의 이홍위 같은 리더에 열광하고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현실의 시끄러운 정치 뉴스에서 벗어난 스크린 속 무결한 리더를 꿈꾸는 것은 아닐지 싶다.


삶의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는 내 삶에 딱히 롤모델을 둔 적은 없다. 그리고 사실 지금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열광하는 관객들에 크게 공감이 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이 버거운 삶에 등대가 되어줄 존재를 바라고 있었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 기준에 맞는 이상적인 존재를 바라 온 것 같다.


복잡하고 힘든 삶을 구원해 줄 나만의 ‘왕’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걸까?


왕사2.jpeg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영화 속 단종의 이야기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왕은 다른 이름으로 대체되겠지만, 힘을 갖기 위한 권력자들의 다툼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 싸움에 휩쓸리고 권력자를 자신의 왕으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인류 역사의 반복에서 나는 감히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어떤 왕이 우리를 평안한 삶으로 이끌어 줄지도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스크린 속 완벽한 환상의 왕을 꿈꾸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보는 안목은 키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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