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티멘탈 밸류_슬픔이라는 유산

by 피터

by 퀴어씨네클럽

평소와 같은, 별문제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알 수 없는 슬픔이 찾아올 때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눈물이 많아서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는 일쯤은 흔한 일인 나도 별다른 이유 없이 슬픔이 찾아오면 꽤 당혹스럽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이 요즘 부쩍 피부에 와닿는다.


<센티멘탈 밸류>의 주인공 노라도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슬픔에 시달린다. 그 슬픔은 표면적으로 노라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의 갈등, 그리고 갈등 끝에 집을 떠나버린 아버지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노라의 아버지 구스타브도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구스타브의 어머니, 즉 노라의 할머니 카린은 구스타브가 어렸을 때 자살했다. 어떻게 소중한 자식을 두고 떠나거나 자살을 할 수 있겠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영화는 그 대대로 이어지는 슬픔의 뿌리를 찾아간다. 카린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였다.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반나치 운동을 하던 카린은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후에 결혼하고 아들 구스타브를 낳으며 행복한 삶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그는 결국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형체 없는 마음의 상처는 사라진 것 같아도, 어느 날 예고 없이 잔인한 고통으로 돌아온다. 온실 속 화초로 살아온 나도 사소한 상처로 아파하는데, 카린과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나의 슬픔도 찾아 올라가다 보면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나이가 많은 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좋지 않은 형편에서 자랐고, 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때 태어나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전쟁이 두려워 도망가는 중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남편이 없는 상황에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들에게 사랑을 주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나이보다 더 나이 든 지금에도 사랑을 받지 못한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가족들 또한 슬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전쟁과 국가 폭력으로 받은 상처는 한 사람의 삶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유전자에 각인된 것처럼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슬픔은 단순히 저주받은 유산은 아니다. 영화의 제목 <센티멘탈 밸류>가 상기시키듯, 슬픔의 토양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센티멘탈 밸류>에서 노라는 배우이고 구스타브는 영화감독이다. 마음속에 치유되기 어려운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 슬픔을 토대로 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다. 할머니 카린은 목숨을 끊었지만, 노라와 구스타브는 예술로 스스로 치유하고 살아 나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리고 영화의 끝,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와 딸의 갈등도 함께 영화를 만들며 해소된다.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거대한 폭력의 세계에서 작고 여린 존재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자꾸 찾아오는 슬픔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나는 보통 슬픔을 모르는 척 외면하는 잘못된 방법을 선택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영화 속 노라와 구스타브가 그랬듯이, 외면하지 않고 슬픔과 함께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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